공책들을 정리하면서, 어디선가 발견한 약간의 독후감들. 예전에 썼고,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기억에서 잊혀져 있던 것이 새로이 발견되는 것은 언제나 작은 기쁨이다. 그렇기에 이하의 글은 최소한의 수정만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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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란, 결국 죽은 사회일 뿐이다. 죽은자(Dead man)이 사회를 이뤄봤자 발전 따위 있을리가 없다. 온고지신의 고사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나 과거에 얽매어 있어봤자 남는 것은 광기뿐이다. 전통이란 전해내려오지만 끊이지 않는 흐름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이다. 천재의 입시, 책 속의 웰튼. 모두 고여서 흐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살기위해서는 모두 미쳐가고, 사회는 광인이 정의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 대해 어떠한 비판이나 대안이 책에서는 존재하지만, 공감따윈 가지 않는다. 책의 편집조차도 맘에 들지 않는다. 영화는 멋졌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만을 본다면 구성이 너무 약하다. 초반부터 반전이 다 드러나는 역자의 글이라던지, 청므부터 짐작이 가능한 설명은 책에서 나올 복선과 반전의 힘을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약한 힘으로 만든다. 낙스의 죽음을 처음부터 예측하고 읽는다면, 사실 이 책은 매우 밋밋할 뿐이다.
진행을 하다보면 결국 낙스는 죽게 되고, 키튼 선생은 쫓겨난다. 비록 정신과 그 영향은 남는다고 하지만 결국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괴물에게 먹혀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학생 몇을 변화시켰지만 그것이 전체로 퍼지지 못하고 가능성만 보여준 무책임한 결말이다. 모두가 패배 해버리고 그저 약간은 변하지 않았냐고 항변하는 말만 흘러내릴 뿐이다. 죽어야만 정회원이 된다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한 생각이 극중 인물들은 매우 긍정적이나 난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의 결정을 가장 존중하는 서양의 사고방식과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동양의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반발일지도 모르겠지만 끝까지 맞서지 않고 한걸음 물러서는 모습은 매우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라 심하게는 패배적으로도 보인다.
키튼이라는 인물 또한 마치 자신이 침몰하는 배에 탄 위대한 선장인양 학생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고, 이끌려 했으나 배는 침몰하고 자신은 배를 버린다. 책임지지 않는 자아도취성 인물로 인식되버리지만, 차라리 낙스의 아버지와 싸우던지 낙스의 죽음에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좀 더 설득력이 높고 인물에 대한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결국 글 전체가 반전을 일찍 보여주고, 공감되지 않는 견해와 마무리가 어설픈 사건, 감정이입이 힘든 인물로 인해 그럴듯해 보이지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심하게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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