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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감상.

by UVRT 2008. 12. 24.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저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출판사
황금가지 | 2003-06-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정식 계약을 통해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이 인정한 국내 유일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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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정말 반칙이다. 추리 소설에서 해서는 안되는 금기를 모조리 범해버린다. 정말이지 이런 반전은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예측할 수 없지는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예측하기 싫었던 그 결말이 나타나 나를 바보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앞을 다시 읽어보면 내가 놓쳐버린 수많은 힌트에 절망할 수 밖에 없다.

"난 이 정도로 바보였던가?"

가사 크리스티, 추리의 여왕.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같이 샀던 두 권의 반전 소설을 모두 땅 속 깊이 묻어버리는 이 반전은 역시나 아가사 스타일이다. 300페이지가 있다면, 270페이지는 사건. 20페이지는 추리. 10페이지가 해결이다. 단! 단 이 5장 만에 270페이지의 이야기가 끝으로 치달아버린다. 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결의 느낌. 견디지 못한다면 아가사의 소설을 읽을 수가 없다. 포와로는 그런 탐정이니까. 홈즈처럼 사건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자신의 주변에 일어난 사건에 잠깐 밥숟갈 하나 얹을 뿐이다. 추리를 귀찮아하는 탐정을 뽑으라면 난 주저없이 포와로를 꼽겠다. 그의 회색 세포는 너무나도 게을러 터졌다.

오리엔탈 특급에서 느꼈던 그 느낌, 답답하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의문과 사건, 그리고 증거들을 보여주며 아가사는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 알려주는데도 아직 범인이 누군지 모르겠어?"

장! 그래, 모르겠다! 우와아아아!! 라고 비명을 지르며 포기해버린 다음 그 뒤를 읽으면 포와로가 능글거리면서 등장한다. '어쩔 수 없네.'라고 말하면서 눈은 웃고 있다. 아, 기분이 나빠진다. 철저하게 독자를 농락하는 아가사 식의 추리는 내 지적 수준과 추리 능력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심어준다. 포와로의 설명을 들으면 모든 것이 명쾌하게 이어진다. 그런데 왜 난 대체 그걸 몰랐을까. 정말 난 바보일까. 포와로의 회색 뇌세포가 필요한 시점이다. 알고도 당하는 공격처럼 난 범인을 알면서도 몰랐다. 그래서 난 항상 마지막에 무릎을 탁, 치며 외친다.

"젠장! 이 녀석이었구나!"

그리고 내 뒤에서 포와로는 슬근하니 웃고있고, 아가사는 어쩔 수 없는 녀석이라고 혀를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