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는 모방범. 분량을 비교하면 댑따 짧지만.
내용은 강도 약한 그로테스크. 물론 내용도 많이 다르지만.
하지만 92년도에 이런 2000년대에 한창 인기를 구가하는 일본 소설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그리고 비슷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소설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이런 소설이 이해되기에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92년도의 일본 소설은 한창 70~80년대 소설들을 번역해서 내어놓은 수준이다. 쇼군이라던지, 대망 이런 류 말이다. 그리고 태반이 당시 감성으로는 '야설'에 가까운 외설적 묘사로 점철되어 있었다. 거기에 한국 문학은 대부분 군사정부를 넘어왔기에 본격적이고, 매우 사회비판적이며 거기에 노골적인 반정부적 성향을 띄는 책들도 많았다. 그런 문단의 분위기에 이런 책이 나온다?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내용은 범죄소설을 표방하지만 그릇된 페미니즘-속된 말로 우리가 일컬는 꼴페미-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실제하는 여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교양만을 추구하는, 사실상 고통받는-학대받는- 여성들의 권익향상을 위한 접근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작가는 표현한다. 그렇다. 오늘 남편에게 매맞는 여성은 법의 개편보다는 우리 남편을 신고해주는 사람을 원할 것이다. 장기적인 정책도 좋지만 단기적이고 매우 직접적인, 자신의 경력에는 써넣을 수 없는 그런 일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아직까지는 불멸의 떡밥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대받는 여성에게 절대적 공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활에 안주하고, 해답을 찾기보다는 하소연을 하려하는 피학대여성들의 패배적인 심리를 작가는 비난하고 있다. 현실의 개선이 아닌 현실에 안주하며 그저 고통을 잊기위해, 또는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소극적 대응을 주인공은 맹렬히 비판한다. 하지만 여성을 그렇게 수동적인 수준으로-어찌보면 애완동물같은 수준으로까지- 타락시키는 남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강렬한 분노를 표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감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마무리는 매우 깔끔하게 이루어지며 전체적 문체도 매우 깔끔하다. 등장인물을 압축시킨 탓인지 좀 더 심도있는 인물상이 나오게 되고 특히 주인공의 심리적 묘사와 성격 변화, 태도 변화는 매우 섬세하게 이루어진다. 달콤한 음료수나 속 시원한 한 잔 술 같은 글들이 많이 나오는 이 와중에 가끔은 이런 담백한 한 잔의 물같은 글을 보는 것은 행복하다. 이 한 잔 물을 마시고 난 다시 음식을 먹을 기력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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