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제목 길다. 최근 주기는 책이 안 읽히는 주기다. 물론 책이 좀 빡빡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안 읽히는 주기다. 이런 주기에는 진득하니 읽을 수 있는 인문서가 좋다. 왜냐하면 인문서처럼 깊이 읽어야 하는 책에는 이런 주기의 독법(讀法)이 어울리니까. 묵독, 그것도 정독.그런 깊고도 은은한 독서가 바로 이 한 겨울 인문서에 어울리는 독법이다. 아, 하늘은 얼마나 시리고 계절은 추운데 인문서의 싸늘한 맛은 깊이 깊이 폐부로 스며드는감. 겔겔겔.
사실 내가 보고 싶었던 부분은 장르 판타지. 와 컴퓨터 게임. 정도인데 그 부분을 보기 위해서 이 책은 추리소설과 근대문학이라는 양대 산맥을 뛰어넘어야 한다. 마지막 100페이지를 위해서 우리는 300페이지를 견뎌야 한다. 하지만 꽤나 할만한 승부다. 초반에 추리 소설에 대한 상당한 사례로 보아 분명 저자는 추리 소설 좋아한다. 이건 확신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정도의 애정을 보여주기란 힘들다. 내가 너무 학자들을 우습게 보는 걸지도 모르지만 난 그저 그렇게 믿고 싶다. 이 사람, 판타지도 좋아하는 것 같아! 라고 말이다.
사실 마지막 판타지에 대한 내용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여태까지의 장르 판타지에 대한 이런 논설들이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에 상당한 초점을 맞췄다면-사실 '드래곤 라자'가 한국 장르 판타지계에서 가지는 위치와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이영도라는 작가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다.- 이 책은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현재 '팔란티어'로 재발간-에 큰 점수를 준다는 점이다. 물론 난 안 읽어봤다만, 엄청난 걸작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왔다. 판타지에 대한 전형적인 문제점이 짚어주고 있지만 다른 논설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장르 판타지에 대한 상당히 낙관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1020세대를 목표로 하여 장르가 발전하였으니 당연히 1020이 열광하고 다른 세대는 시큰둥한 것이 사실이라고 긍정하고 꿈과 희망이 있다는 식의 결론은 꽤나 신선하다. 무게감도 없고 진중성도 없지만 그렇기에 다가오는 솔직한 담백함이 이 책의 결론에는 있다.
물론 저 컴퓨터 게임과 장르 판타지라는 말을 보고 이 책을 산다면 300페이지는 버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추리 소설과 근대소설, 만해와 철도문학, 미소 분할기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100페이지에 있는 장르 판타지에 대한 내용을 위해서도 이 책은 충분히 살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칭찬해주면 사실 나도 좋다. 그래서 난 이 책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의 판타지가 가지는 문체적 빈약함과 플롯의 허술함, 그리고 주제의 가벼움은 절대적으로 개선되어야 하고, 중세적 판타지를 따라가는 이 세태에 한국 판타지라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십분 동의한다. 그리고 이 주장은 언젠가 닫시 재 논의 될 것이고, 언젠가는 이 책의 결론처럼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판타지의 팬으로서 난 이 책의 결론을 지지한다.
'책과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사고의 숲, 감상. (0) | 2008.11.11 |
---|---|
얼터너티브 드림 : 한국 SF 대표 작가 단편 10선, 감상. (0) | 2008.11.09 |
러브 링크, 감상. (0) | 2008.11.05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감상. (0) | 2008.11.03 |
그림자 동물, 감상. (0) | 2008.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