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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그로테스크, 감상.

by UVRT 2008. 10. 11.


그로테스크

저자
기리노 나쓰오 지음
출판사
문학사상사 | 2005-12-1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세계적인 기괴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심리소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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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내주면서 뭔가에 홀렸는지 나도 사버린 책이다. 그리고 시간내서 다 읽었다. 그리고 내려놓고는 생각했다. 입안이 까끌까끌하다. 미쳐버린 사회에 패배한 인간의 말로는 결국 죽거나, 아니면 괴물이 되는 것뿐이였다. 이 책의 결론은 그랬다. 우리가 꿈꿔오던 이상따윈 없다. 괴물같은 세상에 먹혀버리면 그걸로 패배해버린다. 이 빌딩의 숲에 만들어진 정글은 먹지 않으면 먹히는 냉혹한 승부처였다. 그리고 대부분은 패배한다.

쳐버린 세상이다. 단 한 사람에게 얽혀 다 같이 미쳐버리고 말았다. 엄청난 아름다움. 미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사랑받고 싶다는 여성의 욕망이 어우러져 괴물들이 탄생한다. 이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난 갈라파고스의 한마리 느릿한 거북이기에 북극에 살고 있는 곰들이 헤엄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나도, 그도 헤엄치고 있는데 확연히 달랐다. 내가 바로 세상의 중심이고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는게 맞다. 하지만 내 인생을 마음대로 휘저어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가 죽더라도.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악마같은 굴레가 씌워져 모두 다 같이 괴물로 변한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바라본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걸까. 결국 이 책은 모두가 괴물이 되어버리는 슬픈 이야기다. 아, 이놈의 세상은 왜 이리도 슬픈걸까.

러니까, 이 책은 남, 여라는 성별에 따라 엄청난 해석의 차이를 불러올 수 있다. 창녀라는 직업에 대한 태생적 편견과 생물학적 판단력이 이미 자신도 모르게 작용하고 있다. 난 주인공에 공감하지 못했다. 사실상 이 내용의 가장 큰 전제인

'미에 대한 질투와 욕망'

를 난 심도있게 맛보거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재미있다. 잘 짜여진 프로파일링 한권을 읽는 느낌이었고, 내가 보는 수사 잡지보다 더 리얼할 때도 있다. 주목받고 싶어하는 인간과 미에 대한 끝없는 갈구를 통해 인간이 하나의 가치에 심각한 집착을 한다면 어떻게 변하는 것이고 그렇게 변하게 만드는 사회의 잘못을 우리는 처절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난 사회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이따위로 생겨먹은 것이다. 사회를 만든 것은 결국 인간이니 그 정글에 타잔이 되어 사람들을 어디 한 번 구원해봐라. 아니면 적어도 동물로서 풀을 먹는 다는 것,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다는 것을 인정하자. 고고한 수행자는 결국 잡아먹혀 잊혀질 뿐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선천적 재능. 그래, 누군가는 말했다.

'천재를 보면 노력해라. 결국 천재는 노력하지 않아 벽애 부딫히고 노력하던 너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노력하는 천재를 본다면 신께 기도해라. 저런 이와 같은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노력하는 천재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넌 축복받았다.'

래. 내가 아직도 대학가요제를 보는 것은 제 2의 이상은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 생전 난 또 한번의 전율을 느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모든 노력을 뒤엎는 재능을 본다면 축복에 감사하며 기도하리라. 내게 그 재능을 주지 않으신 것은 확실히 짜증나지만, 그래도 그 재능을 보게 해주셨으니 난 행복할 것이다. 이 정글에서 그로테스크하게 변하는 괴물을 내가 발견한다면 그를 위한 구원이 오직 같은 괴물이 되는 것 뿐이라면.

난 진실을 삼킨 괴물이 되기보단 진실을 바라보고 미쳐버린 사람을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