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보여주는 변두리적 서울에서 나는 시대의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이제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으로 갈라져 있다. 인구의 절반이 살아가고, 모든 것이 절반 넘게 고여 있는 도시. 도시라
부르기에는 이제 너무 큰 서울이라는 이름 아래에 존재하는 질척한 진창이 밑단에 들러붙는다. 모두는 열심히 살고 있고, 보답받지
못하고 그런데 어느정도 보답받기는 한다. 출근하는 모두의 머릿 속에 잠겨있는 우울한 일상의 상념들은 남과 다르지만 남과 다르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며 잿빛 하늘만 우러른다. 빌딩에 네모낳게 깎아져 비치는 하늘의 한 조각을 모두는 뒷통수에 짊어지고 묵묵히 걷고
있지만, 소설을 바라보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새카만 뒷통수들 뿐이다. 이런 게 삶이다.
'서울은 다 이래'
서울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비참한 시궁창의 삶은 더욱 깊게 뿌리내려 있고, 더욱 어둡게 틀어박혀 있다. 자취방은 비가 오면 물이
샌다. 바람이 불면 창문이 덜컹거리고 돈을 내지 않으면 따뜻하지도 않고 조금의 밝음은 끝없이 돈을 내야 한다. 뿌연 형광등의
깜빡거림에 눈이 메말라 가면서도 눈만 부비고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돈이 없기 때문이다.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은 샤워기의 온숫물
뿐이다. 이런 비루한 방에서 우린 서울의 무엇을 느껴야 하는 걸까. 나는 비루하고, 내 방은 더욱 비루하고, 내 삶은 더욱
비루하고. 내 지갑은 모든 비루함이 흘러나오는 요술 맷돌이다. 비루함이 매일 매일 나를 물들인다. 피곤하다. 자고 싶다.
장판에 때가 끼어 있어도 이젠 그러려니. 빨래는 쌓여가고 그릇마다 곰팡이가 피고 걸레는 썩어간다. 그래도 밖에서는 잘 입고 잘 먹고
지갑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으면서 등줄기로 식은땀을 흘린다. 사실 우리 사는 인생이 별 것이 있나. 돈이 없어서 그런 거다.
일말의 기대도 접고, 내가 생각하는 남들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는 나를 탓하며 화면 너머에 나오고 귓등으로 들려오는 남들의
모습처럼 살 수 있게 될 때 소소한 행복조차 아닌 일상에 감사하며 미쳐버릴 것 같이 욱신거리는 어깨와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 몸을
쑤셔넣을 뿐이다. 너나 나나. 아, 피곤하다.
진지한 이야기도 필요 없고, 사랑도 연애도 꿈도 희망도 젊음도 추억도 다 개나 주고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않겠나. 라는 생각을 하는게 좋지 않겠나... 싶은 기분이 든다.
서울의 변두리가 아닌 변두리로서의 서울을 말하는 이 시선을 우리는 어떻게 견뎌야 할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잘 처먹고 잘 처살아서
그런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이방인들의 도시에서조차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비오면 비새는 방에서 비샌다고 말도 못하는 비루하지만
자존심은 넘쳐흐르는 어떤 아무개도 서울을 알지는 못할 거다. 알 시간도 없고. 다만 항상 안간힘을 쓰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떠내려 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떠내려 가는 게 두려워서. 사실 둥둥 사라진들 무슨 상관인가 싶긴 하지만, 다들 아둥바둥
지푸라기를 잡으려고 허우적대니까, 잡은 지푸라기를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더욱 허우적 댄다.
지푸라기조차 잡지 못해서.
비참하고 방황하는 것은 특별할 것 같지만, 너무 흔해서 이젠 가십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너무 흔한 비참함들이 여기에는 말갛게
고여있다. 너무 흔해서 비참하다고 말하기조차 민망하고 미안하다. 그래서 다행이 이 책이 나와서 너무나 고맙다. 우리의 사소하고
하잘 것 없는 세상을 되짚어 줘서. 그러니 되짚어 보자. 다시 한 번 찬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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