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아웃은 OUT 이었는데, 이건 원제가 구레이브디-가-라고 대놓고
적혀 있어서 좀 애매 모호. 카타카나 표기니까 준수합니다. 무덤파는 사람, 뭐 심각하게 의역하면 무덤지기 정도 되겠는데, 여기는
순수하게 파는 놈의 입장을 생각합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에 비견할만한 무덤 파주는 남자입니다. 어, 이렇게 말하니까 훈훈한데.
다카노 가즈아키의 데뷔작 "13계단" 이후 두번째 작품인 이 "그레이브 디거"를 보게 된 이유는 뭐, 몰랐어요. 이 책 작가가
다카노 가즈아키인지 내가 알았나. 사실상 추리라기 보다는 활극, 서스펜스 장르물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듯 합니다. 영화화 할 경우
굉장히 재밌는 영화가 되겠지만, 이런건 헐리웃에서 만들어야 진수가 나올 겁니다. 그야말로 도쿄 전체를 활용하는 도주극이니까요.
이정도까지 사람이 튀어야 하나, 싶긴 하지만 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전체적으로 보고 나면 아, 뭐 그랬나? 싶긴 한데다가 이 작가 특유의 정부 불신이 어울리면서 멋들어진 음모 소설이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이사람 검경을 신뢰하지 않아요. 일본, 이래서 되겠는가! 기본적으로 정부 자체가 가장 크고 거대한 악이라는 조건 하에서
시스템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 냅니다. 사람이 나빠서 타락하는게 아니라 시스템이 인간의 타락을 만들어내고 있고, 결국
시스템 자체가 부패해버리는 거죠. 문제는 부패를 밝혀야 할 사람들도 시스템의 일원이기 때문에 이미 맛이 갔습니다. 이런 큰 그림을
먼저 제시하고 소설에서 끊임없이 언급하기 때문에 이 소설의 생명인 도주극이 강한 힘을 받을 수 잇습니다.
왜
이 사람은 이렇게까지 도망가야 하는가. 그리고 독자는 이 사람에게 어떻게 감정을 이입하고, 주인공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모든 해답은 잡으려는 공권력 자체가 나쁜 놈들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완전 나쁜 놈이 나쁜 놈이 아니라, 쓴웃음이 지어질 정도의
장난기가 잘 표현되어 있어서 어색함 없이 책에 몰입이 잘 되네요.
거기에 아무 것도 모르고 계속 기다려주는 달걀형 미인도 존재해서 밸런스가 좋은 것 같습니다. 서스펜스 극의 문제는 끝없는 긴장을
강요해서 나중가면 독자가 지쳐서 나가 떨어지는 부분인데 캐릭터 배치를 잘 해서 이완을 능숙하게 해주네요. 완급 조절에 대한 부분은
확실히 대단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묘사나 문장으로 완급을 조절하기보다는 캐릭터의 배치를 통한 구성적 완급조절 기술이
돋보입니다.
근데 그레이브디거로 연결되는 초반부는
조금 무리수가 있지 않나, 조금 더 할애를 했어도 좋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처음의 약간은 허술한
듯한, 물론 거기에 분량을 할애하면 이야기가 자칫 늘어질 수도 있겠지만, 초중반의 연결고리만 부담없이 잘 넘어간다면, 이제 멋진
활극의 세계로 떠날 수 있을 겁니다. 도쿄를 북에서 남으로 한 번 가로질러 봅시다. 인구 2천만을 거느린 이 희대의 메갈로폴리스는
이제부터 화려한 추격전이 벌어질 겁니다. 총도, 자동차 추격도 별로 없지만 긴장감만큼은 발군일 겁니다.
괜찮은 장르 소설이지만, 사실 저는 이런 활극형 서스펜스물을 찾아 볼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딱 헐리웃 액션 영화거든요. 다
보고 나서 다음에 다시 보고 싶은 맛은 없다고 할까요. 내용을 다 알아버리면 의미가 없는, 그런 책은 도서관 정도에서 보는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뭐 가격은 1만원이라는 저렴함을 자랑합니다만, 아무래도 이걸 소모성으로 구매하는 분은 잘 없을 겁니다. 확실히
많이 팔릴만한 베스트셀러의 요건이 모두 갖췄지만, 스테디 셀러로서는 의문을 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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