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의 초기 번역작인 것 같은데, 역자의 말에 따르면 온다 리쿠의 소설이 이미 이 때 100권 넘게 있다네요. 앞이 막막하면서 즐겁습니다. 제가 산게 20권도 안되니까 아직 4배나 남아있지 않습니까. 평생 볼 수 있겠네.
소설은 정제된 가학성이 넘칩니다. 온다 리쿠 특유의 가학적 상황 설정과 흠집내기는 밝고 음험하게 세상을 비춥니다. 너무 강렬한
햇살처럼 밝지만 눈을 찌푸리고 바라봐야 하는 사람, 사건, 그리고 장소는 굉장히 아픕니다. 완벽한 것들은 아름답지만 내가 완벽하지
않기에 이질감이 느껴지죠. 나와 다른 무언가. 그리고 다른 무언가와도 다른 유일한 이질감. 그래서 생겨나는 그림자에 대한
관찰력은 아마 온다 리쿠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모든 내용이 비슷비슷하지만, 이 그림자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에서 비롯되는
섬세한 묘사는 마치 토요일 해질녘처럼 영원히 반복되기를 기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원하지 않을 것 같은 행복의 순간이
반복됩니다. 그리고, 균열 너머에서 진실은 눈을 깜빡, 나를 쳐다보죠.
독자는 균열에 소리없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라질 행복이라는 건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입 밖으로 소리를 내는 순간 모든 행복이 산산조각이 나버릴 겁니다. 그래서 말조차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식은땀
범벅이 되어가면서 행복함을 연기하게 됩니다. 날카로운 균형감. 농밀한 긴장감.
그리고 독자는 자연스럽게 책 속으로 녹아들어갑니다. 인물의 시각에 자신을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참여합니다. 나의 눈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보고 방관하게 되지요. 전혀 어색하지 않게 모든 것과 관계없는 방관자가 됩니다. 그래서 타인이고 진실을 알되
말없이 책장을 덮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비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기에, 저는 온다 리쿠의 다음 책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비밀을 공유해줄 사람은 거기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조건에 강제로 손도장을 찍어버렸습니다.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아요.
모르는 것은 엄청난 공포이자 두려움이고,
진실은 항상 치명적인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모두 가면을 쓰고 가식을 두르고 거짓을 말하며 우아한 손짓으로 행복을 덧칠하는
겁니다. 대체 모두가 피투성이가 되어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건 누구에게 좋은 일일까요?
인물들의 진퇴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마치 연극처럼 사람이 나오고, 무대 뒤로 내려갑니다. 스포트라이트가 이리저리 바뀌고 누군가
말을 위해 모두가 움직입니다. 연극처럼 원근감을 가지고 움직이는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은 소설의 시점이라기 보다는 극장의
2층에서 바라보는 쿼터뷰 같습니다. 캐릭터의 배치와 로테이션에 관심이 있다면, 저는 온다 리쿠를 권하고 싶습니다. 연극처럼
돌아가는 소설의 무대는 아마도 온다 리쿠가 가지는 분위기의 또 다른 이유 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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