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독서

열두 살 소령, 감상.

by UVRT 2012. 12. 20.



열두 살 소령

저자
아마두 쿠루마 지음
출판사
미래인(미래M&B) | 2008-04-28 출간
카테고리
청소년
책소개
르노도 상, 아메리고 베스푸치 상, 공쿠르 리세엥 상을 석권한 ...
가격비교


전에, 그러니까 약 1년 반 전 쯤에 아트 슈피겔만의 <쥐>의 감상문을 썼었죠. 그 글에서 저는 세상을 살아 남는 것은 운도, 실력도, 눈치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될' 뿐이다, 라는 느낌으로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와 비슷하지만, 전달하는 분위기는 다릅니다. 코즈믹 호러와 블랙 코메디의 차이점이라고 할까요. 아트 슈피겔만은 시대라는 절대성에 속절없이 쓸려가버리는 한 개인의 절망감을 잘 표현해줬다면 아마두 쿠루마는 사람이 얼마나 산뜻하게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미친 세계에서 미친 사람은 얼마나 산뜻할 수 있는지 말이죠.

저흰 정상인이라 믿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마약을 빨아대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정상이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두 쿠루마는 눈 앞에 미친 세계를 들이댑니다. 이 곳에서 태어난 우리는 미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미쳤고 교육이 미쳤고 사람들이 다 미쳤는데 대체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어떻게 안 미칠 수가 있단 말인가, 라는 질문을 강렬하게 던집니다. 문명화란 과연 무엇인가, 선진화란 무엇인가 그 전에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청소년 도서네요. 대단하다, 청소년들.

이 놈이나 저 놈이나 개새끼는 맞습니다. 카다피도 개놈이고 프린스 존슨도 씨발놈입니다. 멀쩡한 새끼가 하나도 없는 곳에서 멀쩡하게 살아갈 방법 따윈 없죠. 주인공은 단지 고모를 찾으러 갈 뿐이고, 할 수 있는건 소년병 뿐이니까 소년병을 하는 겁니다. 기관총을 갈기고 마약을 빨고 사람을 죽이고 묻고 옆에서 픽픽 죽어나가고 나는 안 죽었고, 얘들은 그래도 밥은 주고? 칼라니시코프 총을 들고 소년병이 되는 이유가 뭐 거창한 게 있겠습니까. 땡땡이 쳐서 그렇고 싸돌아다녀서 그렇고 사람 좀 찾으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고 다 그런거죠?

길 가는 차를 세우려고 손을 들다가 총 맞아 죽고, 쏜 놈도 총 맞아 죽고. 그러다보니 다 털리고. 그래서 소년병이 되고, 이번에는 내가 길가는 차를 세우려고 손을 들고, 차가 서고 걔들은 총 맞아 죽고, 다 털고 저녁에 마약 한 대 빨고 밥 먹고 내일 또 차 좀 세우고 총 쏴 죽이고 털고 마약 빨고 밥 먹고 자고 일어나서 죽이고 털고 빨고 먹고 자고. 규칙적인 건전한 생활이네요. 요놈이 죽은 이유는 어제 염소를 사냥해 먹어서 그렇고, 조놈이 죽은 이유는 안 씻어서 그렇고 뭐 죽는 거에 이유 있습니까. 여차저차 하면 죽는거지. 우리가 추모해줄 의리같은건 없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교육은 무슨 의미이고 종교는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까요? 애당초 소위 말하는 문명의 교육을 받을 이유가 있습니까? 그런 교육 받은 새끼들은 전부 개새끼라 쿠데타로 나라 하나씩 해처먹고 군벌의 리더가 되어서 원더풀한 아프리카를 창조하고 있는데요? 책은 말합니다. 세계가 보내주는 구호물자는 어린 놈이랑 늙은이, 병자를 위한 거라 몸 건강한 열두 살의 내가 먹고 살려면 소년병이 되는 수 밖에 없다. 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 책이 말하시길!

"신은 결코 우리를 굶주리게 두지 않는다."

먹고 살 길은 열어준다는 거죠. 그게 소년병이 되고 배신자가 되고 성매매를 하고 뭐 이런 저런 거지만요. 크란족은 이쪽 가면 살고 저쪽 가면 뒈지지만 만딩고는 어딜가나 오케이입니다. 그건 주인공도 운이 타고 났지요. 근데 그게 소년병 하기에 좋은 운이라 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대사는 굉장한 명제를 던져줍니다.

"소년병이 될 바에는 굶어 죽는게 맞다는 말이냐?"

어린이들이 칼라시니코프 총을 들고 마약을 빨지 않으면 밥을 먹을 구석이 없는데 쉬벨 교육이나 처받으라고 하니 니미럴 기분이 좋을 턱이 있겠습니까. 밥은 처먹이고 해야지. 어설프게 문명화 시켜놓고 튀는 문명인 나부랑이 새끼들이 제일 나쁜 겁니다. 이 사람들은 그냥 평범하게 사냥해서 처먹고 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해서 도시가서 일하기도 존나 애매한 그런 낙동강 오리알이 되버립니다. 그러니까 닥치고 소년병이나 되어야지. 어른 새끼들은 포로로 잡아서 총알받이로 쓰고 주술적 가호를 받는 성스러운 소년들은 위대한 병사로 쓰기 위해 마약이나 빱시다.

자, 이책은 대충 이런 이야기 입니다. 죽이고 죽고 마약 빨고 강간좀 하고 그걸로 사형당하고, 고모 찾고, 칼라니시코프 총 좀 들고 다니고, 총알 좀 막아주는 부적 좀 써주고, 털고 벗기고 그러다보니 12살에 소령이네 빌어먹을? 그 모든 것을 치우침 없이 전달합니다. 얘네가 이렇게 된 이유는 사실 그대로 입니다. 더한 것도 덜한 것도 없죠. 그리고 딱히 후회하지도 않고, 비난받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아니고 뭐 그런 겁니다. 우리가 나잇살 좀 처먹고 직장 취직하고는 아, 시발 좆같다. 라고 느끼는 정도입니다. 소년병은 시대와 사회가 원하는 흐름에 존재하는 당연한 주류이고 사람은 거기에 편승하는 겁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이 뭐냐구요? 쉬벨 그건 니가 생각해야지 뭘 아직도 묻고 지랄입니까?

'책과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레이브 디거, 감상.  (0) 2012.12.20
얼어붙은 송곳니, 감상.  (0) 2012.12.20
시간을 파는 남자, 감상.  (0) 2012.12.20
나와 카민스키, 감상.  (0) 2012.11.07
기병총 요정, 감상.  (0) 201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