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독서

눈물을 마시는 새, 감상.

by UVRT 2012. 9. 20.



눈물을 마시는 새

저자
이영도 지음
출판사
X민음인 (구)황금가지 | 2003-01-1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작가의 손으로 빚어진 신비한 세계와 빈틈없이 짜여진 인물 간의 ...
가격비교


이야, 이영도는 뭐라 말해도 결국 애매모호하게 남는데다가, 위치적 중요성을 생각해보면 사실 『드래곤 라자』가 더 강력한 영향력을 지녀야 하는데, 어찌보면 독자적 이차세계 설정을 통한 동양 판타지의 실험이라는 느낌으로 이 책도 꽤나 특이점이 될 요소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리골』도 있고 『흑호』도 있긴 했지만, 『고리골』은 영향력이 너무 부족했고, 『흑호』는 그 내용적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았다는 것은 다들 인정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이 책이 언젠가 회자될 때 중요한 느낌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이제와서는 내용도 뭐 거의 기억이 안나는데 그래도 중요한 흐름은 기억이 나니까, 적당히 한번 씹어보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퓨처 워커』인데 다 안봤지. 하하하.

4개 종족이 등장하고, 특징이 명확하다는 측면에서 어느정도 프로이트 적으로 해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차피 그런건 매우 힘든 점이고, 중요한 종족은 어찌보면 나가와 인간 뿐이니까 할 말도 없고. 어느정도 이 책의 모든 내용은 '불멸성'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다는 점인데 이게 어찌보면 절대성에 대한 긍정론을 포함한다는 면에서 이영도의 세계는 항상 '이상적'이다.

그는 인간을 긍정한다. 너무나 긍정적인 그의 세계를 읽고 있으면서 멍하니 나를 돌이켜보면 어쩌면 세상이란 건 굉장히 멋진게 아닐까, 라는 망상조차 설핏 든다. 세상은 분명히 개쓰레기 같고, 아무런 가치도 없다라는 주장을 견지하기 위해 오늘도 마력의 전부를 소모하는 정예 고2병 허무주의자로서 이영도의 글은 불쾌하지만 즐겁다. 이영도가 '타자성'에 따른 '낯설게 하기'를 즐긴다는 건 우리 모두가 『드래곤 라자』에서 익히 경험했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세계관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의 세계에는 모두 이유가 있고,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덜 착한 선만 존재한다.

모두는 분명히 그 이유를 가지고 있고, 있을 법한 정도로만 움직인다. 이건 개연이고, 그렇기에 이야기는 될 수 있지만, 드라마는 없다. 그래서 이영도의 글은 논픽션의 향기가 난다. 있을 법한 있을 수 없는 이야기. 이영도의 초기 소설이 왜곡된 사대주의 성향을 띤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그것은 당시 영향을 받은 SF나 판타지 문학들이 모두 영미문학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점이었다고 옹호해주고 싶다. 그는 뻔한 이야기를 낯설게 하고, 모든 것에서 동일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가 사랑하는 캐릭터는 없고, 그가 미워하는 캐릭터도 없다. 다만 벌려진 판 위에서 모두가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영도의 소설은 항상 이상적이다. 돌출된 불확실의 세계가 아니라 모든 것이 불가피하게 나빠질 뿐, 절대적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부조리도, 불평등도, 오해도 모두 해결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해결 될 거라는 믿음을 던져준다. 그렇기에 그의 세계는 이상적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이 구현되는 것을 소설에서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의 꿈은 '실재하는 이상'이다. 그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하는 절대적이고 운명적인 법칙이 있고, 인물들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소설로 서사시의 세계를 그리는 그의 세계는 그야말로 신실하다. 밝은 숙명론의 세계가 존재하고 선택은 잘못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 안배되어 있었을 뿐이고, 허투로 낭비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은 짧은 지식으로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다름과 같음에 대해서.

이 소설 또한 그렇다. 새들이 왜 그것을 마시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것을 마시도록 결정되어 있을 뿐이고,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거부의 의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을 따라가며 그것에서 가치를 발견해 나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활기차지만 싸늘하다. 아무리 비석의 글씨를 지우고 또 지워도, 세상은 비석에 새겨진 대로 행해질 것이다.

그리고 새는, 정해진 것을 마시게 된다.

'책과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착한 고양이 알퐁소, 감상.  (0) 2012.09.20
파리의 포도주, 감상.  (0) 2012.09.20
향수, 감상.  (0) 2012.09.05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감상.  (0) 2012.09.03
행복한 프랑스 책방, 감상.  (0) 2012.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