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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행복한 프랑스 책방, 감상.

by UVRT 2012. 7. 18.


행복한 프랑스 책방

저자
마르크 레비 지음
출판사
노블마인 | 2008-08-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굿바이 파리, 봉주르 런던! 삶이 지루하고 일상이 권태롭던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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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프랑스 연애 소설이다. 이런 더러운 일이 있나. 프랑스라면 일단 이건 뭐 연애하는건지 섹파를 만든건지 모를 정도로 섹스를 하면서 사랑을 속삭이다가 말도 안되는 사소한 일로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싸대기를 날린 뒤에 외국으로 훌쩍 떠나가놓고는 편지에는 구구절절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적어서 보내면 한 놈이 또 따라가서 섹스를 하고 결국 헤어지는 그런 이야기여야 하지 않는가!

어, 시발 잠깐만? 이 책 그런 이야기 같기도 한데? 약간 다른데 그런 이야기야. 별 거 없었네. 여태까지 프랑스 소설이라면 장 르노 보통이나 마방쿠, 까스티용, 거 뭐더라. 베르베르 같은 인간들 밖에 못봐서 아 프랑스 소설은 전부 사이코 드라마구나,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좋은 로맨스네요. 서른 다섯이 넘어서도 사랑은 청춘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네요. 그런데 전 사랑이 없어서 더 슬프네요. 쌉쌀합니다. 과연 다크 비터의 본고장 프랑스.

남자라면 누구나,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할만한 생각을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다. 크고 멋지고 빠르고 강하진 않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전기톱과 나무 위의 비밀기지를 꿈꾼다. 그리고 그 비밀기지를 구성하는 것은 나와 친구다. 혹은 가족. 하지만 이미 가족은 저 멀리 떠나버렸고 내 곁에는 친구 밖에 없다. 그러니 난 친구와 함께 살고 싶다. 그러니까, 애딸린 이혼남 둘이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게 분명하다. 옆집도 아니고,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사는게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일지라도 결국 남자는 무리를 이루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내 영역에도. 이 책은 훌륭하게 그 두가지 모순된 욕망을 충족시키는 환상적인 관계와 집이 등장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남자가 나오니까 여자 또한 필요하다.

외국 로맨스와 한국 로맨스의 차이는 역시 섹스와 연애에 대한 금기가 어떤 것이냐, 라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물론 나같은 미친 놈들은 이상 성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섹스를 원하겠지만, 그런건 외국이나 한국이나 야설이다.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감정에 충실할 것인가에서 우리는 외국인들을 야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별 상관 없이 원나잇을 하고 섹스를 한다. 그리고 누구도 그 관계에서 이상함은 느끼지 못한다. 어차피 이제와서 미혼모나 이혼남 같은건 이슈도 되지 못하는 사회가 아닌가. 취직이 어려울 뿐이지 오히려 복지가 잘되어 있고 직장이 있다면 결혼 같은 귀찮은 행사 따윈 없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행복하지 않는가.

매번 다양한 나라의 로맨스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역시 로맨스의 기초는 섹스고 그 섹스에 대한 관념이 로맨스의 나라별 특색을 창조한다. 결국 사귀어 보자는 것은 언젠가 우리 한번 섹스나 하자, 라는 말과 다를 바는 없잖는가. 사랑한다면 뭐 어떤가. 그리고 애가 생기면 이제 둘 다 돌아버리겠지. 하지만 외국은 적어도 로맨스에서는 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혼자 키우면 그만이지. 나도 한 3개월 전까지만 해도 감상문에 섹스라는 단어를 쓰는 걸 굉장히 꺼려했던 것 같은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그게 무슨 상관이었나 싶다. 만 18세가 안되었을 때 나는 섹스가 뭔지 알고 있었고, 지금도 섹스가 뭔지는 안다. 그리고 당신도 그럴 것 아닌가. 모른다면, 지금부터 알면 그만이다. 성적 금기는 점점 흐릿해지고, 로맨스는 점점 넓어진다.

이렇게 저렇게 줄줄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행복한 프랑스 책방의 뭐가 행복한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별로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애당초 원제인 '나의 친구, 나의 사랑'이 더 좋지 않는가. 왜 이건 프랑스 책방인가. 까놓고 프랑스 책방에 낚여서 책을 산 나 같은 불행한 자도 있지 않는가. 그래도 사놓고 욕을 할 정도로 거지같은 책은 아닌게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로맨스를 싫어한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친구와, 여자. 그 이야기다. 그리고 미묘하게 친구가, 조금 더 중요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결국 여자가 이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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