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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나를 위해 웃다, 감상.

by UVRT 2012. 5. 10.



나를 위해 웃다

저자
정한아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9-04-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나는 잠이 오지 않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 가령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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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허세를 섞어서 제목만 적은 감상문을 적어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제목이 너무 간절하게 와 닿아서 제목만 써놔도 가득 차오르는 벅참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아마 내가 좀 더 대단해지고 나서야 가능할 것 같고, 일단은 주절주절 써보는게 아직은 나에게 좋을 것 같다.

단편집의 감상문은 예전에 굉장히 힘들게 느껴졌다. 하나 하나 모든 소설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것 같았고, 일체감이나 통일감 같은건 거의 느끼기가 힘들었다. 내가 볼 때 소설집은 땅만 같을 뿐, 다른 나라들이었다. 이제 어느정도 억지를 부려보자면, 책 안에 흐르는 하나의 줄기가 흐리게나마 보인다. 반투명한 글자와 하얀 종이 뒷편에 반짝거리는 세계의 흐름이 보인다. 거창한 개소리는 여기까지 허세처럼 해놓고, 일단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보자면 단편집은 편집에 아무 생각이 있건 없건 간에 작가 한 명이 쓴거라 전체적으로 공유되는 세계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게 있다는걸 알게 되면 이런 여러편의 글도 하나의 글처럼 감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감상문의 장벽이 그나마 조금 내려가게 된다.

확실히 나는 아직 미숙하고, 나는 추악하며, 나는 조잡한데다가, 미천하고, 불민하고, 어리석기까지 하다. 거기에 하찮기까지. 웃음은 팔기 위해 있는 것이고 예의는 돈을 위해, 그리고 배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다. 더러운 놈이라 욕해라.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하다. 가식같은 웃음을 나에게 파는 너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의문이 든다. 난 이렇게나 개씨발 좆 쓰레기 같은데, 나는 그걸 너무나 잘 아는데, 나라서 절절이 그리고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데 왜 넌 나를 보고 웃는거냐. 날 보고 화내고, 비웃고, 욕하고, 경멸해주는게 더 편할 것 같다. 쓰레기장에 처박혀 깨진 콜라병을 등짝에 푹신하니 베어 눕고 토사물 같은 음식물 봉투에 고여 있다 고양이 발톱에 찢어져 흐르는 구더기 섞인 산성비를 마시는게 내 인생이고 나인게 편하다. 쩍하니 들러붙는 장판을 넘어서 아스팔트에 얼굴을 갈아붙이면서 누군가 내 뒷통수에 뜨끈허니 토악질을 해준다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질러버릴 수 있어서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아마 분명히 그렇게 된다면 난 좆같다며 나를 뺀 모든 걸 저주하고 원망하겠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마 웃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담겨있고,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내 인생을 위한 그런 웃음. 딱히 내가 잘하기 싫어서 이러고 사는게 아니고. 까놓고 모르는 새끼들의 위로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면상에는 침을 뱉고 싶다. 내가 좆같다는건 내가 잘 아니까 위로하지 말고 욕을 해주길 바란다.

세상은 분명히 굴러간다. 나같은 인생 실패자들도 어디선가 살아간다. 그리고 그건 세상이 미쳐서도 아니고, 그 사람이 죽을 죄를 지어서도 아니다. 그냥 세상은 그런 실패와 어딘가의 성공이 버무려진 물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성공을 담당하고 있지 않을 뿐인거다. 물론 내가 노력했다면 성공했겠지만, 노력은 취미가 아니었다. 뒤질만큼 노력하는 새끼들은 노력이라는 재능을 타고난거다. 싯팔.

그러니까 그냥 나를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지금 너한테 김치에서 나일론 한 가닥이 나왔다는 이유로 웃으면서 욕처먹고 있는 나는 좆같고 개같고 쓰레기 같다. 점심 시간에 처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곤두선 밥알을 위장으로 처밀어넣는 나는 소화불량이다. 모든게 끝나고 집에서 시팔 돈 없어서 소주나 두 잔 기울이는 좆같은 인생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현재 현실이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가. 그러니까 난 실패한 인생이고 잘못 살아온 인생이고 좆같은 삶이며 뒈지는게 나은 미래만 가지고 있는건가.

딱 반이다. 고등학교 때 병신도 일진도 얼짱도 1등도 아니었고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도 그랬고 유치원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냥 저냥 이름을 말하면 반은 알아듣고 반은 비웃고 반은 모르고 반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대학에 와서 A+도 F도 아니고 B+도 아닌 3.2와 3.3을 어정쩡하게 오가면서 살았다. 여자친구는 있었던 것 같고 남들처럼 헤어졌다. 그러다가 한 3분 정도 설명하면 뭐하는 곳인지 아리송한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니, 알바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어찌되건, 일은 하고 있다. 어쩌면, 일도 안하고 있다.

난 실패했나?

이런 삶을 살아온 나에게, 솔직한 웃음을 줄 수 있는건 나 뿐이다. 난 잘하지도, 잘못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무덤덤하지도 않게 살아왔다. 누군가 나를 비웃는다면 억울할 것이고, 나를 칭찬한다면 비웃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웃어줄 건. 나 뿐이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 웃다.
그러니까.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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