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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날 먹어요, 감상.

by UVRT 2012. 5. 7.



날 먹어요

저자
아녜스 드자르트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10-08-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 권의 프랑스 요리책과 같은 삶의 풍미가 가득한 소설맛있는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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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그야말로 이야기다. 물줄기가 흐르고, 우리는 그 흐름에 맡기고 배를 띄워 논다. 노를 젓지도 않고 돛을 펼치지도 않는다. 그저 빙글빙글 대야에 담긴 아이마냥 하늘이 빙글 빙글 도는 걸 보고 바람이 부는걸 보고 강둑에 툭툭 부닥치며 내려간다. 얼마나 자유롭고 평화로운가.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평안하게. 가끔 배가 뒤집히고,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잠시. 흘러간다. 사랑을 하는 건 어떻고 고민을 하는 건 어떤가. 필요한 것은 이 작은 통 하나이고 우리가 흘러가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강물이 흐르기 때문이고 세상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 그것이 세상과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흘러간다.

사람의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 굳이 사랑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사랑은 언제 해야 하는가. 도통 알 수가 없다. 물에 물탄 듯 흘러가면 좋겠지만 그건 잠시 강둑에 멈춰 뭍을 오르는 행위다. 그 곳에 평원이 있을지, 산이 있을지 논이 있을지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른다. 강을 따라 내려가던 나와 뭍에서 살아가는 너와 함께 강둑을 걷고 싶을 따름이다. 그리고 눈물 흘리며 헤어지면 되겠지. 나를 따라 강으로 가자. 난 너를 따라 뭍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사자와 물고기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사자와 사자의 자식. 그리고 물고기인 나. 강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물고기는 강으로 돌아갔다.

통 따윈 필요 없었다.

물고기가 물에 있는게 어떤가. 통 따위? 원래 필요 없었던 거다. 지금까지 통을 타고 내려왔던 거야 뭐, 이제와서  어쩌겠나. 사자아비와 사자자식은 잊어버리고 물을 따라 헤엄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물고기를 만난다. 이 강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이 흐름에 매끄럽게 흘러가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괜찮다. 그들은 헤엄치고, 나는 흘러갈 따름이다. 어쩌면 나는 물고기도 아닐지 모른다.그들은 흘러가는게 아니다. 나는 흘러갈 따름이고, 다시 강둑에 선다.

흘러흘러 내려왔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곳이다. 사자 아비는 어디론가 가버렸고 사자 자식은 설핏 보인다. 강인지 뭍인지 잘 모르겠다. 반쯤 물먹은 흙이 있는 강둑에 나는 서 있다. 나는 나고, 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흘러내려 이곳에 왔고, 툭 하고 부딫힌 이 경계에 서 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면 나를 가져라. 나조차 나를 가지지 못해 나도 내가 누군지는 모른다. 그렇게 모르고 흘러간다.

강둑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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