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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물의 뱃머리, 감상.

by UVRT 2011. 7. 11.



물의 뱃머리

저자
겐유 소큐 지음
출판사
열림원 | 2003-01-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승려의 아들로 태어나 작업인부, 나이트클럽매니저 등 다양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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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뱃머리는 뭘까. 물의 배. 물의 배라. 왠지 사람같다. 물이 가득 찬, 그런 따뜻한 뭔가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 물 속에서. 사람. 그런 사람이 물과 맞닿는 곳은 아마도 온 몸이 아닐까. 어떤 부분도 아닌 온 몸으로 물살을 느끼는, 그래서 모든 곳이 바로 물의 뱃머리. 온 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금 이 몸.

사람에게 있어서 물을 마신다는 것은 자신을 바꾼다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몸에서 물이 7할을 차지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우린 매일 그 물을 마시고 있다.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아마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한달 전의 나와는 7할이 다른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리고 7할이 다르다면 어쩌면 난 한달 전의 나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날 유지시켜주는 3할과 함께 항상 변하는 7할의 나로 살아가는 것, 그게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그 물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그리고 마신다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어쩌면 변하고 싶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어떤 것으로.

사람들은 아무런 의미없이 물을 마시고 숨을 쉬면서 살아간다. 공기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고 숨쉬는 것에 거창한 철학을 붙이지도 않는다. 물도 맛있으면 그만이고 배탈만 나지 않으면 물 같은거, 사실 상관 없다. 하지만 사람은 물을 마시고 있고 조금씩 변하고 있다. 좋은 물을 마신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겟지만 적어도 성격이나 생각이나 영혼같은, 그런 뭔가 어려운 문제들은 왠지 70%의 수분을 제외한 30%의 무언가에 담겨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런 어려운 걸 제치고 나는 그냥 내 몸의 7할을 생각한다. 내 몸안에서 출렁이는 그 물들을 가만히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물을 마신다. 한모금,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차가운 물의 흐름이 가슴을 훑고 뱃 속 깊이 어둡게 가라앉을 때 난 갈증이 해소된 쾌락과 함께 한모금 정도 변해버린 나를 만나게 된다. 100%의 설탕물과 99.9%의 설탕물은 거의 같겠지만, 다르니까.

나는 오늘의 나를 희석한다. 아침의 나를 흐리게 만들고. 점심의 나를 바꾼다. 저녁의 나를 정화하고 내 목을 타넘어들어가는 이 차가운, 뜨거운, 미지근한 흐름은 아무런 부담도 없이 내 속으로 녹아들어간다. 마치 자신이 찾아가야할 길을 찾아가듯이. 스믈거리는 어떠한 무엇처럼 다리 없이 꿈틀대는 매끄러운 무엇처럼 자연히 내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마 그 물과 내 몸이 만나는 그 어딘가가, 그리고 그 물이 최초로 내 안의 물과 만날 때 생기는 아무도 느낄 수 없는 작은 파문의 지점이 바로 물의 뱃머리가 아닐까.

안개 걷히고 물의 뱃머리에는 바다 가까워

그리고 그 뱃머리에는 모든 물의 고향, 어떤 물도 흘러들어가는 상선약수의 도가 거대하고 고요하게 멈춰서서 흐르는 바다의 우주에 가까워진다. 나라는 물과 내가 아닌 물의 만남. 나와 타(他)의 만남. 이것은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와 만나는 순간이다. 그 파문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그렇기에 물의 뱃머리는 道인 바다에 한 없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한모금 물을 마시고. 나라는 도는 새롭게 태어난다. 한 없이 바다 가까운 그곳에서 물과 물이 만나고 있다. 안개는 걷혔다. 탁하게 오늘을 보낸 나의 세계에 안개가 사라질 때 물의 뱃머리는 바다에 가까워진다. 한없이. 그리고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