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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감상.

by UVRT 2011. 7. 28.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저자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4-10-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원작소설. 사랑과 성을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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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뭐라고 해야할까. 초콜릿은 말이야. 결국 별로 안나오잖아... 라고 해야 하나? 음식 소설의 새로운 장을 본 것 같다. 이게 판타지의 클래식으로 꼽힐 정도로 오래된 책이지만, 내가 본 음식 소설은 혀, 금단의 팬더 정도가 전부이고 이 책은 그 2가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소설을 제시하고 있다. 요리와 요리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추억일 것이다.

 

사 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 맛도 없었을 것 같은, 그리고 지금 주면 '이걸 어떻게 먹어'라고 외칠 것 같은 음식들도 어릴 때는 정말 잘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그 음식을 다시 먹어도 맛이 없다. 옛날의 그 맛이 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그 맛에는 추억과 이야기가 녹아 들어가 지금 내 음식에는 없는 환상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먹었던 초콜릿의 첫 달콤함, 한약의 쓴물 가운데를 휘돌던 들큼한 당귀의 끝 맛, 토마토와 치즈로 버무려진 피자의 맛, 빵과 고기로 만든, 그 때는 너무나도 먹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던 햄버거, 언제 처음 먹어봤는지 기억조차 없는 스파게티, 김치와 두부만 들어가 있던 우리 집 김치찌개의 새콤한 맛, 장독 속에 잠들어 있던 간장의 기분좋은 짠내, 고추장의 달짝한 매움, 엄마가 해주던 계란 볶음밥의 추억, 어딜 가서 먹어도 결국 다 다르던 엄마의 카레, 제사 때마다 명절 때마다 기다리던 전들의 절묘한 간, 왜 항상 먹던 햄인데도 그 때는 그렇게 맛있었을까. 소금만으로 간을 배어들게 하는 돔배기의 짭짤함, 탕국의 깊은 구수함, 나물의 고소함, 유과의 바삭함, 추억 속에 있는 그 모든 맛있는 것들은 추억이 배여들어 더 맛이 좋아진다. 그건 확실하다.

 

스케이트 연습이 끝난 뒤에 먹던 자판기 우유와 코코아를 섞어 링크장 얼음 위에 두면, 그것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맛있었다. 방금전까지 지치던 얼음 위에 올려둔 종이컵을 바라보고 있을 땐 행복했다.

 

플루트 수업 전에 엄마가 사주던 치즈 햄버거는 항상 너무너무 맛있었고, 해는 항상 뉘엿이 지고 있었던 것 같다. 오후의 황혼을 기억하게 하는 음식은 내게 있어서 아직도 치즈 햄버거.

 

감기가 걸려 열이 날 때, 난 황도가 먹고 싶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백도를 사주셨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난 항상 황도를 추억한다. 그 달콤한 복숭아의 향기를. 그리고 난 언제나 믿는다. 황도를, 백도를 먹으면 나을 거라고.

 

설 날 동안 다니던 친척 집의 마지막 집은 항상 앞산 할아버지 댁. 그곳에서는 항상 찹쌀로 빚은 단술을 주셨고, 난 설날을 그 단술의 맛으로 기억한다. 피곤하고 귀찮아도 그 단술을 먹고 나면 항상 곧 그 모든 것이 끝났고 난 항상 그걸 두 그릇씩 먹은 것 같다.

 

어 릴 때 영어를 배우러 다니던 곳의 선생님은 우리에게 가끔 바나나 케이크를 해주셨다. 난 사실 그 때 이후로 바나나 케이크를 먹어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 곳의 향기와 그 케이크의 맛과 선생님의 느낌이 바나나 케이크라는 이름으로 항상 기억된다.

 

토 끼고기를 볼 때마다 난 내가 어릴 때 아재 집으로 보낸 우리집 장닭이 생각난다. 엄마는 닭을 주면 아재가 토끼를 줄거라고 이야기했고 누나와 나는 토끼를 기대하며 닭을 보냈다. 그리고 토끼가 왔다. 손질이 되서. 물론 맛있게 먹었지만 아직도 난 토끼고기를 보면 그 장닭이 생각난다. 그리고 닭을 키우던 누나와의 추억을 생각한다.

 

죽 을만큼 응원을 하고 새벽이 되어 파김치가 되어 먹었던 그 김밥의 맛은 잊지 못한다. 모두가 지쳐있었고 사실 돈도 다들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천원짜리 김밥 한줄이었고 몸 편하게 먹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 때의 김밥과 차가운 물 한잔은 너무나도 맛있었다.

 

엄청나게 걷고 돌아온 우리들 눈 앞에는 물을 부은 사발면이 있었다. 미리 부어놓은 터라 물은 미지근했고, 면은 불어있었지만 아직도 내게 있어서 최고로 맛있는 라면은 그 사발면으로 기억된다.

 

모 든 음식을 곰곰히 생각하면 항상 어떤 추억이 엮여 나온다. 사람은 먹어야 살아가고 우린 항상 무언가 먹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항상 추억이 있고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자그마한 요리책 속에 적힌 조리법을 말하면서 이 책은 음식에 뿌려진 추억이자 기억들을 다시금 말해주고 있다. 웨딩 케이크에 녹아있는 축복받은 결혼식 이야기처럼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에는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걸 기억하지 않을 뿐이지 기억하려 한다면 아마 누구라도 음식과 얽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 어릴 때 먹었던 그 음식의 맛이 기억나는 것도 있고 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이상하게 항상 음식들은 굉장히 맛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먹을 수 있고 맛이 바뀔리도 없지만 이상하게 그 때의 맛보다는 못하다. 그리고 난 지나간 음식에 추억이 있다고 믿는다. 엄마라는 추억이, 가족이라는 기억이, 유년시절이라는 아련한 그리움이, 그리고 과거라는 향수(鄕愁)가 우리에게 음식을 기억하게 한다.

 

음식을 기억한다는 것은, 추억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추억이건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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