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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도마뱀, 감상.

by UVRT 2011. 7. 10.



도마뱀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출판사
민음사 | 1999-02-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B-5252 양장본 | 180쪽 | 188*128mm (B6)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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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도마뱀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게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든 내용은 굉장히 도마뱀스럽다. 파충류에 대해 내가 가진 감각은 달라붙는 서늘함이다. 굉장히 매끄럽지만 뭔가 차갑게 휘감겨오는듯한그 촉감은 부드러운 냉기라는 굉장히 모순적인 쾌락을 이끌어낸다. 차가운 정이 파충류에는 존재한다. 거꾸로 감기는 눈처럼, 삶의 흔적처럼 남겨두는 허물처럼 파충류는 기괴하고 꺼려지지만 굉장히 매력적이다.

라고 그럴듯한 말을 적어놓고 한 동안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있다. 백이 넘어서면서 나는 감상문에 뭔가 멋진 말들을 기대했고 남과는 다른 감수성이 있었으면 했고 나만은 다른 평면에 존재하는 듯한 우월감을 원한 것 같다. 처음의 나는 다만 재밌는 걸 읽고 재밌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어느샌가 분량에 연연하고, 함의적인 뜻을 분해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건 독서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이었던 것 같다. 그래프를 보고 느끼는 자료의 분석과 같은 무기질한 잣대를 나는 책과 글에 들이대고는 스스로 객관적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지식이 부재된 오만함. 나만은 특별할 것이라는 자만심. 아니, 나니까 특별할 거라고 믿는 거만함. 결국 그런 꾸며진 가식들은 한 문단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제, 다 소모된 느낌이다. 책은 파충류처럼 거리를 두고 있다. 매력적이지만, 그게 전부다. 아무리 예뻐도 뱀은 뱀이고 아무리 멋있어도 냉혈이 데워지지 않는다. 그 날 선듯한 거리감이 이 책을 두르고 있다. 누구도 서로를 깊게 이해하지 않지만 그들은 서로를 예뻐한다. 소모될 것도 없었는데 가식의 가면으로 서로를 가리고 필요하지도 않는 신경을 써가며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노력을 해야하는 이 땅 위에서, 새벽 3시 술에 절어 이성도 감성도 체력도 다 소모해버리고 다만 사람이기에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든 관광도시의 작은 술집처럼 책은 가라앉아 있고, 온기가 돌지만 싸늘하고, 외롭지만 여유롭다.

바나나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행복과 불행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비슷하지만, 원천적인 면에서 너무나도 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을 것만 같다. 종교를 경멸해 믿지 않는 사람과 자신을 경멸해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처럼. 분명히 겉은 같지만 그 깊은 속에서는 공존할 수 없을 정도로 어긋난 감성이 존재할 것이다.

바나나의 글들이 모두 로맨스라면 세상의 연애는 분명 섭씨 30도 정도 일 것이다. 따뜻하지만 춥다. 피부에 와닿는 이 건조하고 차가운, 하지만 30도나 되는 연애는 겨울 같다. 햇살은 따뜻하지만 너무 추워서 난 나를 꽁꽁 감싼다. 내 속은 내 안으로 덧씌워져 숨고, 난 결국 나 홀로 있을 때 나를 보여주게 된다. 그것도 나 자신에게만. 진실되지만 이것은 분명 세상에 대한 냉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