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같아 보이지만, 연인이 될 수 없는 가족. 가족이지만 가족으로 보이지
않는 가족. 부모자식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부모자식. 키워준 부모님과 낳아준 부모님과 나를 만들어준 부모님. 그리고
기억을 공유하지 못할 때 느껴지는 상대에 대한 낯설음. 온다 리쿠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가족 간의 연애감정을 잘 다루는
소설입니다. 온다 리쿠의 글들은 근친 소재나 늬앙스를 잘 써먹는데 그녀의 미스터리어스한 이야기를 굉장히 절제된 느낌으로 잘
담아내어 글이 천하거나, 음란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도 특징이랄 수 있다.
그녀의 글은 89년에 서 있는 것 같다. 7080의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90이후나 21세기의 글 같지도 않다. 다만 그 중간에
서 있을 뿐. 그리고 약간, 아주 약간 더 80년의 느낌이 든다. 89년의 추억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89년을
말하라 한다면 이 책과 같지 않을까. 야하지만 음란하지 않고, 슬프지만 상처받지 않는다. 그녀의 글은 상처난 채 웃고 있는 아이
같다. 놀이터에서 오늘 데굴 굴러놓고도 집에서는 배시시 웃는 아이의 미소처럼, 상처 받았지만 상처 받지 않았다. 그녀의 글은
중립적이다.
글은 기억을 말하고 있다. 가족을
구성하게 하는 것은 기억이라고. 옛날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지닌다. 아버지가 기억하던 나의 7살과 내가
기억하는 7살의 추억이 완전히 다르다면. 나는 그 해 여름의 바다가 기억나지만 아버지는 그 해의 계곡을 말하고 있다면? 어머니는
내가 아팠을 때 복숭아 통조림을 사주셨다고 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따뜻한 죽이라면. 어긋난 기억이 하나하나 확인될
때마다 나는 의심하게 된다. 사람은 기억이 어긋날 때, 사람을 의심한다. 그리고 기억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가족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가족이 아니라면,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않는다. 당신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건 나와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나의 가족인 너를 사랑하고 있을지 모른다. 너를 바라보지 않고, 나를 사랑해주는 너를 바라보며 나는
사랑을 연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가족이다.
순수한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그 사람의 '역할'로 보일 뿐이다. 그 때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은
총무니까. 그 사람은 남자니까. 그 사람은 자식이 있으니까. 누구도 그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보지 않는다. 그 사람이 연기하고
있는 포장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추론할 뿐이다. 그리고 가족 사이에서 그 포장은 기억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기억이 맞지 않아 그
포장이 벗겨질 때 눈 앞에 있는건 추하고 하찮은 한 사람 뿐이다. 그게 사실이다.
책은 단순한 미스터리물에서 하나의 단계를 더 밟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제목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우리는 세월에 가려진 진실 속을
헤엄치고 있는 기억력 짧은 물고기에 불과하다. 햇볕의 따뜻함은 추억으로 미화되고, 눈부심은 잊혀진다. 그늘의 시원함은 옛 날의
즐거움이 되지만 그 음산함은 망각되어 저 먼 곳으로 사라진다. 모든 인간의 기억은 사람을 포장하고, 우린 그 포장지를 보며
살아간다. 그리고 아무도 포장 안의 내용을 보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내용을 직면한 사람은 모두, 돌아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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