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게 오츠이치 란 말인가. 많은 소문을 들었고 고어한 글을 쓴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처음으로 오츠이치를 본 것 이 'GOTH' 였기 때문일까. 그의 글은 그야말로 Gothic 하다. 이 부분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절제된 살해의지 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왠지 그 의지에서 유아적인 치기가 느껴진다. 모든 것이 아직 어리다.
어리기에 풋풋하고, 덜 익었으며 그렇기에 잔인하고 노골적이다.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직관'의 시선은 오직 어린아이의 특권일지 도 모른다. 어떤 것에서도 고개돌리지 않고 바라보고, 본 그대로 말한다. 그리고 모든 어른들은 그 말에 섬뜩함과 동시에 두려움 을 느낀다. 오츠이치는 순수성에서 느껴지는 잔인함과 진실됨이 보여주는 두려움을 굉장히 세련되게 잡아내는 사람인 것 같다. 그의 글 은 항상 아슬한 외줄을 타고 있는 듯하고, 자칫하면 유치한 사춘기의 감정 놀음과도 같은 사건과 모습들을 유년시절의 잊을 수 없 는 기묘한 경험으로 치환해 낸다.
요즘 인터넷에 흘러다니는 많은 말들 중에 '중2병'이라는 것이 있다. 정확한 규정은 없고, 무엇이 중2병이다, 라는 명확한 정의 도 없지만 다들 그 느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느낌의 범위는 모두가 다르며, 실체조차 없어 어떤 것도 이 단어로 설명이 가능 한 마법의 용어이기도 하다. 엄밀히 따지자면 약 15세 전후로 오는 사춘기의 불안한, 또는 격렬한 심리 상태로 진행되는 자기 정체 성 확립 과정에서 드러나는 몇몇 과잉 행동들을 통칭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사실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존재하는 것이기에 누구 도 중2병과 중2병이 아닌 것을 구별할 수가 없다. "난 오직 재즈만 듣지. 그 몽환적인 느낌은 날 꿈의 세계로 보내주는 것 같거 든!"이라는 한 줄의 말도 사람에 따라서는 중2병이 될 수도 있고, 중2병이 안될 수도 있다. 결국 중2병을 가릴 수 있는것은 ' 허세'라는 근거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 무엇이 허세이고 무엇이 허세가 아닌지는 '진정성'의 유무에 있게 된다.
하지만 인터넷의 많은 사람들은 진지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신이 운명을 만들었다면 나는 그 신을 죽이겠다.'라는 사람을 이해하지 않 고, 다만 현실을 모르는 허세꾼으로 몰아 붙일 뿐이다. 극도로 현실적인 세계의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판단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상 식과 멀어진 세계는 모두 중2병으로 규정짓고 비난하며, 비웃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오츠이치를 권할 수 없다. 앨리스 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듯이 환상에는 환상의 말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 곳에는, 그런 오츠이치의 말이 존재한 다. 그리고 나는 오츠이치의 글에서 허세를 넘어선 무언가 투명한 시선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의 글은 어떤 면으로건 가치롭 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오츠이치의 글은 단순한 중2병으로 볼 수도 있고, 직관을 통한 세련된 비일상의 제시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 마도 읽는 사람의 취향일테고, 이 책에 나오는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모두 똑같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순간이고, 기대하지 만, 가끔 잊고, 그리고 잊혀진다. 일상적인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숨쉬는 비일상에 오츠이치의 세계가 있다. 그의 데뷰작이기 에 이 글의 완성도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오츠이치가 어떤 작가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방금 알았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17세 데뷰작이란다. 그렇다면 나는 이 작품에 좀 더 많은 별을 주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반개 정도. 멋진 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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