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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카카오 80%의 여름, 감상.

by UVRT 2011. 3. 31.



카카오 80%의 여름

저자
나가이 스루미 지음
출판사
들녘 | 2008-04-2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7세의 눈부신 여름, 혼자라도 괜찮아? 17세 소녀들의 눈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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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라고 해야할까. 딱 10대 초중반에 보면 좋을 법한 소설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재미는 그럭저럭이고, 센스도 그럭저럭. 그렇게 이거다,  싶은 부분은 찾기가 힘들다. 반전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투적인 이야기 진행은 공식이 정해진 순정만화의 약속된 진행처럼 익숙하고, 위기감은 있어보이지만 전혀 두근거리지 않는다.

십대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돌려 말한다면 십대가 아니라면 자극받을 요인이 전혀 없다. 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는 내용이다. 거기에다가 대상층은 소녀로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이건 한국에서 말하는 인터넷 소설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다만 인터넷 소설은 글이 거칠고 굉장히 감정적이라면, 이 글은 적어도 문학적 다듬기를 거쳤다는 것 정도가 차이점 아닐까.

인터넷 소설은 거칠지만 야성적이다. 야채를 손으로 찢었을 때 나는 풋풋한 향처럼 즐거운 신선함이 존재한다. 그것이 비록 남과 녀가 사랑을 하고, 위기를 겪고 결국 그 사랑을 이룬다는 상투적인 흐름을 지닐지라도, 나는 항상 그 사랑을 지켜보며 즐거웠다. 마치 슈퍼맨이 결국 세계를 구할 것을 알지만 그 위기를 보며 마음을 졸이는 것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원래 사랑이란, 십대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라고. 상투적이고, 뻔하고, 항상 그게 그거 같지만 돌이켜 생각할 때 미소짓게 하는 그런 것이라는 걸.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은 뻔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 말은 십대라는 단어와 어우러지면서 다른 단어를 끌어낸다. 청춘과 과거. 그리고 추억. 추억도 항상 뻔하고, 우리의 청춘도 뻔했다. 들어보면 모두 비슷비슷하게 지내왔고, 특이하게 지낸 사람이라고 해봐야 몇 없을 뿐이다. 너나 나 같은 사람들은 모두 뻔한 시절을 지나왔다. 그런데도, 지독하게 상투적이고 뻔한 그 과거들은 항상 어떤 소설보다도 재미있게 되새겨지고 어떤 영화보다도 즐겁게 추억된다. 하지만 막상 그 때는, 항상 씁쓸했다.

언제나 청춘의 한 페이지를 내가 직접 쓰고 있을 때는, 씁쓸했던 것 같다. 싸한 향기와 함께 항상 힘들고, 고생이었고 죽고 싶었고, 뭐 그랬다. 물론 지금도 그런 거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페이지를 넘겨버리는 순간 어느샌가 달콤한 추억으로 기억된다. 달달한. 너무나 달콤해서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달콤한 향이 퍼진다. 바로 어제의 쓴 맛은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것처럼. 하얀 연기가 한줄기 피어오르면서 뭔가 날아가 버린 것처럼 청춘은 달콤하게 변한다.

지나가버려야지만.

결국 이 소설은 그런 청춘의 경계에 있다. 나는 몇줄만 더 쓰면 이 페이지를 다 채우게 될 것이고 이 쌉쌀한 맛은 곧 달콤한 향으로 변할 것이다. 카카오 80%의 쌉쌀함은 이 여름을 채우고 있고, 여름의 끝은 달콤한 향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청춘의 사랑이자. 청춘 그 자체다. 이 소설은, 그 페이지의 마지막 한 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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