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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우부메의 여름, 감상.

by UVRT 2010. 10. 31.



우부메의 여름

저자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출판사
손안의책 | 2004-03-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50년대 도쿄, 유서 깊은 산부인과 가문의 한 남자가 밀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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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에 따르면 이 책은 장광설이 심하다고 하다. 그리고 그 소문이 맞았다. 인물들이 무슨 한이 그렇게 맺혔는지 말이 무지하게 많다. 정말, 엄청나게 많다. 사람 말이 한장 이상 넘어가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본 것 같다. 그리고 상당히 신선했다. 잡기식의 지식들은 흥미로웠고 초현실적인 내용을 초현실적 내용으로 환상에서 현실로 치환시켜 사실을 드러내는 방식은 멋졌다. 즉 이소설은 T. Todorov의 분류에 따르자면 환상적 괴기(fantastic uncanny)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환상(fantastic)과 사실(fact) 사이의 망설임(hesertation)을 여실히 드러내며 종반부까지 망설임을 끌고가고 있다. 그리고 독자는 인물과 함께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하고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서 환상 속을 헤매게 된다.

일은 끝없이 헤메이고 어느정도 모두 해결되었다고 독자가 믿던 초자연 현상은 어느샌가 뒤집기를 반복하면서 그 실체를 구름 속에 감춘다. 이야기는 절묘한 균형을 타고 있으며 인물들도 우왕좌왕하며 그 균형의 추를 이룬다. 하지만 교고쿠도라는 존재는 이 소설에서 굉장히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어찌보면 소설을 매력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교고쿠도가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고 그 심증은 이야기가 진행돠면 진행될수록 확신으로 변한다. 아마도 교고쿠도가 해결하겠지, 그의 말이 아니면 모두 틀린 말이겠지, 라면서 독자는 자포자기와 같은 체념상태로 돌입하게 되고 결국 추리를 포기하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마저 생겨난다. 그리고 그 때부터 이 글은 추리소설이 아닌 단지 교고쿠도의 설명에만 의존하는 독특한 회상록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독자가 끈기가 없다면 결국 이 소설은 교고쿠도의 일기장이 되던가, 그의 망상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소설의 강점이자 최대의 약점이 된다. 추리 소설인데 독자가 추리의 어려움으로 인해 추리를 포기하고 탐정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추리를 할 수 없다라는 절망감에 체념하고 탐정에게 기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 소설은 추리 소설로의 자격을 버리고 단지 하나의 괴기 소설이 되버린다. 그리고 소설의 중심은 사건에서 교고쿠도로 옮겨진다. 그리고 비로소 서사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을 보노라면 왠지 우리는 이중의 매개를 통해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것은 매개의 역할을 하는 주인공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채택하지만 실질적으로 1인칭 관찰자와 같이 전개되는 내용에서 오는 괴리감이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이 감상문도 사실 교고쿠도 같이 맴돌고 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지만 약간씩 다른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본의적으로 내용은 같고 아마 이 감상을 읽는 사람들은 서서히 짜증이 날 것이다. 대체 이 놈은 왜 같은 말을 이렇게 계속 반복하면서 분량 늘이기에만 급급한 것일까. 하지만 이런 짜증이 이 소설을 지배하고 있는 주된 분위기이고 이걸 견딜 수 없다면 교고쿠도의 설명과 글의 중후반부는 죽을만큼 책장이 넘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내 말도 하나로 귀결된다.

"이 책의 재미는 그 모든 짜증이 극단으로 압축되어 한번에 터질 때 느껴지는 시원함에 있다."

그래, 감상글은 읽을만 했는가? 화내지 말고 들어달라. 나는 내 갑갑함을 공유해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지금 당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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