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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하얀 강 밤배, 감상.

by UVRT 2010. 10. 31.



하얀 강 밤배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5-01-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어두운 밤중 하얀 강에 떠오르는 한 척의 배와 같은 외롭고 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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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잠든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에서는 휴식이 유독 Thanatos적 이미지와 연결이 되지만 그 기능은 Eros로 발현된다. 끝없이 가라앉지만 인간은 그렇게 꿈을 통해 무의식과 만나고 그것으로 진실을 깨닫는다. 바나나의 글 중 8할은 이렇게 사건이 시작되고 진행되고 끝맺는다. 깊은 무의식을 탐구하며 인간 본질에 잠들어 있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욕망에 다가서고 모든 인물은 object petti a를 꿈꾼다. 그리고 이제야 알았다. 그녀의 소설은 모두 환상적 괴기다. 설명되어지지만 그것은 단지 설명에 불과하다. 항상 사람들은 망설이고 우리는 그 망설임에 동조하게 된다. 단 한번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고 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그 본질에 동질감을 느끼고 아픔에 공감하며 자연스럽게 책의 상처를 우리에게 전이한다.

책은 누구에게도 집착하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고 자신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는다. 다만 열걸음 정도 떨어져서 가만히 보고 있는 누군가를 우리에게 조곤조곤 말해준다. 작가는 '현실에 몸을 던져' 그 틈바구니에 직접 들어가는 사람이고 비평가는 '현실에서 한 걸음 떨어져' 그 모습을 방관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한걸음 떨어져 그 몸을 비벼대며 살아가는 소설이다. 방외자, 소설에서조차 방외자로 취급받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의 그저 흘러가는 농담들을 한올 한올 모아 이야기를 짜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예전에 뻔한 헐리우드의 이야기를 농담소재로 삼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공식화된 패턴을 비웃으면서 모두 공감하며 웃게 된다. 악당은 반드시 마지막에 자신의 계획을 모두 말해야 하고, 주인공은 꼭 최후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폭탄은 1초가 남았을 때 해제된다. 같은 상투적 장치들은 진부하지만 확실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악당이 최후까지 과묵함을 지키면서 주인공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썰어버리면 안되고 그 전에 주인공이 마을을 벗어날 용기도 없는 소시민이면 더더욱 안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가지고는 소설을 만들 수가 없다. 누구도 옆집 백수 형의 방에서의 하루종일을 알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건 사건도 없고 교훈도 없어서 이야기가 되지 못한다. 이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그 백수형에게도 그 날 매우 특별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겪을 범직한 매우 사소하지만 특별한 경험. 그 경험은 순수하게 끓여져 한방울 향수처럼 독자에게 떨어진다.

그 맑은 청량감이 이 소설에 배여있다. 흥미진진하지도 않은 이런 소시민적 모습들이 사소하지만 초자연적인 현상과 합쳐지면서 소설은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연금술사를 통해 지금 내 눈 앞에 다시 한번 황금처럼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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