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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하치의 마지막 연인, 감상.

by UVRT 2010. 10. 30.



하치의 마지막 연인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출판사
민음사 | 1999-09-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키친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색다른 사랑이야기.할머니가 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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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자신이 여자의 처음이기를 바라고 여자는 자신이 남자의 마지막이기를 바란다는 너무나도 상투적인 말이 있다. 물론 나도 반은 공감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반은 해당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 소설은 그렇게 한 남자의 마지막 연인이 된 여자의 모습을 그려준다.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환경을 가진 두 남녀는 역시나 바나나스럽게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약속된 대로 한 명 죽는다.

이제 어느정도 바나나의 구성에는 익숙해졌다. 언제 어떻게 되고 뭐가 이러저러하게 얽힐지도 보인다. 하지만 바나나의 매력은 구성에 있지 않다. 그 단순하고도 진부한 그리고 억지스러운 구성을 이렇게나 매력적이게 바꾸는 건 아마 그녀의 영혼이 가진 문체 때문이 아닐까. 바나나의 글은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와 같다. 누가 주인공인지 누가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이지만 재밌다. 그리고 뻔한데도 재밌기 때문에 몇번이나 읽을 수 있게 되고 독자는 오랫도록 그 작품을 잊지 못한다. 바나나는 작품을 기억시키기 보다는 자신을 기억시킨다. 매력적인 그녀만의 문체는 독자를 중독시키고 어느샌가 책장에는 '요시모토 바나나'가 가지런히 꽂힌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서로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너무나도 모순적이지만 가장 절실하고 진실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 해 겨울 나에게 온 편지도 그런 뜻이었을까. 단지 내가 나쁜 놈이라서 그런 말이었던 것일까. 아픔은 시간이라는 약으로 추억이라는 흉터를 남긴다. 그리고 나도 그 흉터를 보며 생각한다. 과연 나는 이렇게 그를 사랑했던가. 하치가 죽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하치가 변심하지도 않는다. 물론 여자가 죽거나 변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고 하치는 그녀를 자신의 마지막이라고 인정했다. 어찌보면 기괴한 관계에서 바나나는 사랑을 끌어내고 그 수십가지 시선 중 하나가 이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다.

누군가의 연애를 끝장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저 그 사람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끝날 것을 알면서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은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물론 그 모습은 결코 숭고하거나 신성하다는 말이 붙을 수 없다. 그저 사랑하고 있으니까.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고 감각적인 것이다. 사랑이 이성(理性)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 사랑을 하려는 자는 아무도 없다. 글은 고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감동은 고귀하다. 이렇게 바나나는 내게 새로운 사랑을 한 편 다시 보여주고 떠난다. 또 다른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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