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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하르마탄, 감상.

by UVRT 2010. 5. 10.



하르마탄

저자
이상혁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 | 2001-12-2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데로드 엔드 데블랑의 작가 이상혁의 장편 판타지 소설. 사막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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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로드에 비해서 확실히 발전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작품이 바뀌면서 발전하는 게 느껴지는 작가는 두렵다. 그리고 두근댄다. 소설이란 작가의 여행에 독자는 잠시 따라갈 뿐이지만 이 여행이 점점 현실로 느껴질 때 독자는 행복해진다. 그리고 이상혁은 좋은 안내인이다. 아르트레스나 자신의 단편들과도 매우 미약하게 연결을 지으면서 그는 자신의 충실한 팬 층에 대한 답례도 잊지 않았다.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진행되는 독특한 서술과 꽤나 노력한 듯한 사막부족국가의 모습에서 작가의 노력이 느껴지고 당시에는 이슬람과 사막지역을 무대로 한 글이 거의 전무했다는 면까지 감안하면 작가의 모험심에 감탄하게 된다. 근데 아직도 잘 모르겠는 게 이 제목인 하르마탄이라는 거, 용권풍 말하는 거 같은데 아마 맞겠지. 소설 상에서도 짤막하게 언급돼서 확신은 안서지만 주인공의 삶으로 추측할 때 이 하르마탄이라는 거, 용권풍인 것 같다. 사막에서 바람에 거역하고 살아갈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런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나타내기도 하고 자유로운 바람처럼 살아가는 주인공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이 제목이 좋다.

평범한 건국형 판타지인 것 같지만 내부의 인물들이 잘 얽힌다. 데로드 앤 데블랑에서도 느꼈지만 이 작가는 평범하고 진부한 스토리를 매력적인 인물 관계로 잘 포장해서 글 전체의 질을 높이는데 능숙하다. 타고난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말은 작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무시하는 것 같아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천부적인 것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작가는 능숙하게 인물들을 다뤄내고, 사건을 매력적으로 만들 줄 안다. 역시 작가는 기본 실력이 받쳐줘야 한다. 아무리 재밌는 소재를 써도 재미없게 쓰는 놈은 안 되니까.

하지만 역시 전쟁을 그리는데 있어서 좀 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주인공의 강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는 꽤 훌륭했지만 그 정도가 너무 과했고 주인공 하나에만 너무 집중하는 서술 또한 전쟁의 사실성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거기다가 언제나 전략과 승리에 이르는 과정이 도식화되어 있는 것 같아 독자를 만족시키기에는 모자랐다. 주인공의 삶이 이 책의 중심이라면 정복전쟁은 그 중심을 흐르게 해주는 골격 중 하나다. 하지만 그 골격이 너무 부실해서 주인공의 삶에 대한 비중마저도 상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데로드 앤 데블랑에서는 이런 대규모의 전투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주인공의 강함 또한 이 하르마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데로드와 하르마탄은 달라야 하는 것이다. 상황도 주인공도 다른 글에서 작가는 주인공을 똑같이 사용하려 한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4백의 병사를 가지고 있을 때나 1만 2천의 병사를 가지고 있을 때나 변하는 건 전혀 없었다. 분명 작중에서 작가는 4백과 1만의 군대를 다스리는 건 다르다고 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작가의 강점과 약점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글이었지만 작가는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면서 강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그래서 이 글은 망가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이 약점을 후속작품들에서도 계속 극복하지 못하거나, 피하기만 한다면 결국 그는 작가적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피하는 것도 극복의 한 방법이겠지만 독자로서는 탐탁지 않다. 적어도 그의 전쟁서술이 인물을 다루는 것에 눌리지만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소설은 균형을 맞출 수 있을 테니까 독자는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균형이 맞지 않는 하르마탄은 재밌지만 위태로운 소설이다. 독자는 재밌게 읽지만 마지막에 들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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