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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레이센, 감상.

by UVRT 2010. 5. 10.



레이센

저자
권태용 지음
출판사
로크미디어 | 2004-06-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꿈꾸는 자의 영원한 안식처. 평생을 살아도 단 하나의 세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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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판타지는 3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게임을 소재로 쓴 것'
'게임을 주제로 쓴 것'
'게임 하는 것을 소설로 쓴 것'

탐 그루는 첫 번째에 해당한다. 주인공이 프로게이머라는 것일 뿐, 실질적인 내용 진행에 게임 자체는 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팔란티어(久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는 두 번째에 해당한다. 게임은 중요한 장치지만 게임 자체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아니다. 게임은 소설을 진행시킬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게임과 소설은 별개로 움직인다. 즉 소설을 위해 게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즉 인물들이 게임에서 레벨이 올랐다는 것, 장비를 얻었다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게임을 수동적으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나온 대부분의 게임 판타지는 세 번째에 해당한다. 게임을 하는 것 자체를 소설로 쓴 것이다. 이들에게 장비를 얻은 것은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초사이어인이 된 것과 같은 비중을 지니고 있고, 이들의 레벨이 오르는 것은 베지터가 타락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비중을 지닌다.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게임인 것이다. 이 분파는 아마도 기존 게임 팬픽 소설에서 발전된 것 같은데 이 레이센도 극초기작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내가 여태까지 본 세 번째 분류의 게임 판타지 중 가장 완벽하다. 왜냐하면 결말이 가장 완벽하기 때문이다. 게임 판타지들이 가지는 약점 중 하나가 결말을 내기가 굉장히 애매하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하지만 몇몇 작가들은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고 몇몇은 자폭장치를 만들어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1. 주인공이 게임을 그만둔다.
2. 게임 회사가 거대한 악이라서 게임 회사가 망한다.
3.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세상이 판타지가 된다.
4. 주인공은 계속 게임을 하고 게임도 계속 서비스 되지만, 여운을 주고 끝낸다.
5. 그냥 끝낸다.
6. 작가가 연재를 포기한다.

그 리고 그 보완책과 나머지 자폭 몇 개가 합쳐지면서 게임 판타지의 결말은 대부분 이 6가지 틀에서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기술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거나 자폭을 할 용기조차 없는 글쓴이가 태반이다. 그래서 이 방법들을 깔끔하게 사용한 작품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게 아직 게임 판타지가 갈 길이 멀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한다.

일 단 1번은 게임판타지 최고의 슬픈 결말로 꼽을 수가 있어서 아직까지 레이센을 제외하고 이 결말을 맞이하는 글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일단 게임을 그만두려면 뭔가 엄청난 계기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임 판타지는 처음에 그냥 시작한다. 그래서 계기를 만들려면 무슨 손목을 자르는 고통을 주인공에게 부과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게임밖에 할 줄 모르는 주인공은 평범한 니트잉여은톨이가 된다. 그런 슬픈 사회 조명 소설은 순문학에서도 감당하기 힘든데 재미를 추구하는 판타지는 오죽하겠는가. 거기다가 게임 판타지의 주 소비층은 10대다. 그들이 '니들 게임 하면 이렇게 인생을 조진다.'라는 결론의 소설을 읽을 리도 없고, 좋은 평을 줄 리도 없다. 그래서 1번은 힘들다.

2번은 탐그루, 팔란티어, 라이프 크라이 등에서 사용되었는데 이쯤 되면 왜 굳이 게임을 소재로 잡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시된다. 그리고 그 의문을 깔끔하게 설득한건 아직 탐그루와 팔란티어 뿐이다. 이 결말을 사용하려면 왜 하필이면 '게임'을 소재로 택했는지에 대한 작가의 뚜렷한 주관이 있어야 할 것이다.

3번은 탐그루와 라이프 크라이(올마스터도 2번 3번 섞인 걸로 안다.)에서 쓰였는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이건 결말이 아니고 2부 예고가 된다는 거다. 세상이 깡그리 망하지 않는 이상 결국 이 무너진 경계를 수습해야 하는데 이걸 수습한건 아직 탐그루 뿐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이 무너진 경계를 결말로 사용할게 아니라 어떻게 이걸 깔끔하게 결말로 만들지를 생각해야 한다.

4 번은 가장 병신 같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차피 4권정도 가면 주인공은 게임 내의 최강, 최고 유저가 된다. 그러므로 아무 때나 큰 이벤트 하나 벌이고 이걸 주인공이 희생하는 척하면서 막아내면 된다. 그리고 아직 이걸 깔끔하게 성공한 작품은 신마대전 정도뿐이다. 근데 그것도 결국 주인공이 계삭한 거에 가까워서 완벽한 4번 결말은 아니다.

5 와 6은 작가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범죄라서 이걸 쓸 바엔 그냥 인간을 포기하고 글을 써라. 그게 나을 것 같다. 하지만 용기가 실력의 약 3배가 된다면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범인(凡人)은 함부로 따라하다가 인생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하는 방법이다.

어쨌건 모든 결말들이 깔끔하게 끝나지 않고 뒤를 예고하는 더러운 3류 연작 영화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태생적으로 온라인 게임 자체가 끝이 없는 이야기를 표방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인데 주인공은 만날 이벤트를 하고 혼자 다 해결하고 게임에서 점점 신적 위치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온라인 게임은 엔딩도 없으니 게임적으로 끝낼 수는 없고 이렇게 잘나가고 게임으로 먹고사는 주인공이 게임을 그만둘 이유도 없다. 그래서 결국 게임 판타지는 기승전결의 구조에서 결말에 엄청난 결격사유를 안고 시작하는 불완전한 소설이 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장편화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레이센은 주인공들이 시작할 때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현거래로 얼마.'

자 금을 확보하면 게임을 접는다. 라는 확고한 목적이 있었고 작가는 그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현실로 돌아간다고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있었고 게임은 게임일 뿐인 것이다. 비록 그곳에서 얻는 것들은 즐겁고 가치 있지만 모든 것은 아니다. 게임은 계속 될지라도 이야기는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레이센은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졌다.

장 편화와 약한 결말을 처음부터 보완하고 시작한 소설이기에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게임 소설 중에서는 수작으로 말할 수 있고 일반 판타지 중에서도 잘 쓰인 소설이라고 부를 만하다. 일을 아무리 크게 벌려도 결국 크게 벌릴수록 돈도 빨리 벌리므로 이야기는 자연히 끝으로 치달아간다. 그리고 큰 일이 벌어질수록 이야기는 절정으로 따라간다. 결국 이 이야기는 재미있을수록 마지막이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게임판타지로는 보기 드문 좋은 구조를 지녔다.

그 리고 이 구조에 밀리지 않고 작가는 열심히 글을 썼고 적당한 농담이 버무려져서 게임을 하는 것이 내용인 게임 소설 중에서는 신마대전과 함께 최상위에 놓아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나도 확고한 구조는 이후 다른 게임 판타지들이 차용할 경우 표절의혹이나 식상함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단발성 구조로 끝나버린 한계가 있다. 판타지 자체가 오래되지 않았고 게임 판타지는 그 소재의 특수성으로 많은 약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탐그루, 팔란티어, 레이센, 신마대전 등 많은 글들이 그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는 걸 보여주면서 가능성을 시사했다.

만 약 나에게 게임 판타지를 꼽으라면 반드시 이 책도 함께 말할 것이다. 이 책은 게임 판타지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고 그것을 소화해냈다. 문학적으로는 완성도가 떨어질지 몰라도 이 책은 소재의 가능성을 넓혔다는 점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탐그루, 팔란티어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게임을 소설에 사용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장르 판타지 중 게임을 소재로 한 소설들 중 중요한 위치에 놓일 것이다.

물론 내용은 그냥 평범한 게임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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