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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하이어드, 감상.

by UVRT 2010. 3. 7.



하이어드(1)

저자
김상현 지음
출판사
드래곤북스(시공사) | 2003-11-0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98년 탐그루로 데뷔한 김상현 코스믹 판타지 장편소설.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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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하다. 하지만 이 글은 정말 김상현다운 글이라고 생각되고, 탐그루에서 받은 느낌은 역시나 하이어드에도 존재한다. 그리고 탐그루에서 보여준 그의 에두르는 현실비판은 하이어드에도 깊게 뿌리내려져 있다. 주인공은 둘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한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인물들은 분명히 잘 얽히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분절된다. 처음의 트랜서. 두번째의 군인. 세번째의 해방군이라는 주인공의 위치 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마치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언제라도 내용을 끊을 수 있게 준비하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인물들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면서 뚝뚝 끊어지는 주인공의 모습과 개연성에 덧대어지지만 역시 중심이 끊어져 있는 느낌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하나씩 떨어뜨려놓고 보면 재밌고 한 권씩 봐도 재밌을 책이지만 단숨에 네권을 읽으면 분명히 어색한 느낌이 들게 된다. 어차피 4권이나 왔으면 차라리 조금 더 신경써서 책을 5권으로 늘리고 이야기의 흐름을 좀 더 매끄럽게 이어냈다면 이 책은 더 좋지 않았을까. 12권이나 되는 처녀작을 쓰느라 기가 쇠해서일까, 이 4권은 치열하지만 비어있다. 흥미로운 주제를 간결하게 잘 담아냈고 인물들도 잘 만들어졌지만 그 중심을 메워줄 뭔가가 부족하다. 주제의식도 충만하지만 작가 자신이 너무 지쳐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그림자에 먹히는 트랜서를 보면서 자신이 쓴 글에 압도당하고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이 겹쳐진 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트랜서가 트랜스를 통해 처음 보는 무언가와 소통할 수 있다면 작가는 글을 통해 처음 보는 독자와 소통한다. 그리고 작가는 항상 자신이 쓴 글과 싸우고 있고 어떤 사람은 그 글에 먹혀서 더 이상 글을 내놓지 못하고 사라진다. 평범한 SF 같은 이야기를 작가는 자신의 일처럼 잘 풀어내고 있지만 자신도 가슴이 답답한지 이야기는 가끔 꼬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들이 모이면서 소설은 세등분이 나고 나는 읽으면서도 어딘가에 갇혀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작가가 만든 하이어드의 문을 열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도 기쁘지 않고 우울했다. 여전히 갇혀있으니까.

많은 것을 말하려하고 깊은 것을 담아내려 하지만 아직 그릇에 넘치는 물처럼 위태하고 안쓰럽다. 높은 곳을 추구하는 작가의 의지가 글에 배여있는게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안목이 필요한 것 같다. 무겁고 깊은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것은 내게도 필요한 말인데 글을 읽고 무겁고 깊은 통찰만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조용히 마음을 열고 글을 읽다보면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게 좋은 감동이다.

책은 합리적 이성을 주장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즉흥적 감성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이 글에서 김상현은 '탐그루' 때와 같이 우울하지만 가치있는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글은 우울하고 어둡지만 그의 말은 힘차고 앞서간다. 이런 기묘한 모순 속에서 글은 매력적으로 빛나고 있다. 원석은 좋고 기술자도 실력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완숙되지는 못했다. 이 글도 그렇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보이는 투박하고 진실된 빛을 한줄기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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