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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문장강화 개정판, 감상.

by UVRT 2009. 9. 16.



문장강화

저자
이태준 지음
출판사
창비 | 2005-03-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새로운 감각으로 꾸민 글쓰기 공부의 고전(古典) 오랫동안 사랑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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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얼마만에 쓰는 새로운 감상인가.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는 반증이리라. 조금이라도 많이 읽고, 조금이라도 열심히 쓰도록 스스로를 다잡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작은 것부터 조근히 하려 하나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니 모든 일이 서툴다. 스스로를 좀 더 가라앉혀야 할 것 같다.

기본. 모든 글의 기본을 담고 있다. 소설의 기본도 아닌 산문의 기본이다. 문장을 쓴다면 무릇 이렇게 써야 할 것이다. 글쓰는 요령이나 생각을 떠올리는 기교를 말하고 있지 않다. 산문에 대한 깊은 생각을 보여주며, 문장(文章)을 어떻게 써야하는가에 대해 담박하고도 진실되게 말하고 있다. 정신을 논했기에 이 책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다. 세태에 휩쓸리지 않는 질문은 가벼운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돌이켜보게 한다. 소설은 흥미와 재미를 위해 써진다는 말도 20세기에 후반에서야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면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을 나타내는 수단인 글의 가치와 문장가라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세계를 말해준다. 국어법조차 정립된지 얼마되지 않은 그 과도기에 서서 저자는 문장을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은 세월의 바람 속에서도 날아가지 않고 묵직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책 자체가 풍부한 예시를 강점으로 삼고 있는지라 이제 조금만 더 세월이 흐르면 이 책은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가 되버린다. 시대를 초월하는 정신을 논하지만 그 근거가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난 이 책의 2편을 누군가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시만 보충된다면 이 책은 다시 반백년을 버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태준이라는 이름을 감당할 작가가 과연 당대에 몇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없지만은 않을 터. 70 ~ 90년대를 포괄하는 '문장강화 2편'이 나온다면, 그리고 저자가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는 그런 문장가라면 돈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이 책이 신문의 사설을 모은 것을 편집했지만 분명 바른 글을 위한 책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너무나도 아쉬웠다. 한국문학이 태동한지 단 20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다면 광복후 반백년도 훌쩍 지나버린 이 현대에 문장이란 어떻게 변화했을까. 어떻게 변했다고 사람들은 생각할까. 나올리가 없다, 또는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며 2편을 기대하고 있다.

책은 그렇게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기대하게 하고,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글의 근본은 무엇인가.
무엇이 잘 쓴 글인가.
어떤 것을 우리는 좋은 문장이라 평해야 하는가.
글은 시대에 있어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시대는 글에 있어 어떤 의미인가.
우린 대체 어떤 문장을 써야 하는가.

저자는 책에서 말했다. '문체는 시대에서 개인으로 그 영역을 옮겼다.' 라고. 문체의 의미를 넓게 생각해보면 이것은 글 자체가 영역을 옮기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대 속의 개인을 서술하는 것이 과거의 글이었다면 이제는 개인 속에서 시대를 찾고 있다. 우린 자기 자신 안으로 한 없이 들어가 세계를 찾고 있다. 그렇게 되며 우린 과거보다 더 많은 세계를 발견했고 그만큼 글은 많은 곳을 오간다. 글은 과거보다 더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글은 과연 과거보다 발전했는가. 옛 글보다 깊이는 없어지고, 그 맛은 기껍지 않다. 세월에 걸러진 고전과 싱싱한 현재를 비교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래도 역시 깊은 풍취가 점점 부족해지는 것 같다. 곱게 원두를 갈아 반나절 간 정성껏 내리는 커피나 찻잎을 골라 천천히 깊게 우려내던 찻물 보다는 믹스와 티백이 많이 팔린다. 빠르고, 값 싸고, 쉬워야 한다. 이렇게 많은 책이 양산되고 많은 작가가 거리를 활보하고 많은 글들이 쏟아지는 당대를 과거의 문호들은 무어라 말할까. 우리는 과연 발전했는가. 글은 대중에게로 내려오고 개인에게 파고들어간다.

과도기에 서 있던 문장가는 자신의 세계에서 산문의 미래를 긍정했다. 그리고 낙관했다. 지금 세상은 과연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우린 과연 단어에 고뇌하고 문장을 되씹으며 글과 마주보며 눈물 흘리던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정성을 다하고 있는가.

우린 지금 올바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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