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독서

고래, 감상.

by UVRT 2009. 1. 6.


고래

저자
천명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4-12-1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자인 천명관의 '특별한' 장편소설. ...
가격비교

다 읽고 나서 죽을 뻔 했다. 소리를 질러야 함에도 나는 주변의 상황으로 인해 감정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소리쳐 외치고 싶어진다. 난 지금 대단한 것을 봤다고, 지금 여기에 대단한 것이 있다고 소릴 질러야 속이 시원해질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온 몸이 삐걱댄다. 소리가 터져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억지로 누르고 있다. 너무나 답답하다. 감상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떠올리면 위장이 메슥거린다. 가슴을 꽉 누르는 압력은 바다처럼 넓고 깊고 크다.

장을 넘길 시간과 인내가 있다면 이제 당신은 반사적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능숙하고 그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가면 결국 가진 돈을 다 털어내서라도 이야기의 끝을 들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책 사면서 이야기 값은 선불로 냈으니 끝까지 따라붙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대체 이 책은 어떻게 되먹은 것이 모든 요소가 녹아서 부글거리면서 끍어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 속 한 마리 고래처럼 묵직한 중심 이야기가 소설 속을 헤엄치고 있다. 잡힐 듯 하지만 결국 잡히지 않은 대왕고래처럼. 어떻게 이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소설은 끊이지 않을까.

반을 넘기면서 내 머릿속에서 한 작가와 한 작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절대로, 절대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작가와 작품이 설핏 윤곽을 보였다. 의문은 의심이 되었고 곧 확신으로 변했지만 그것은 불신으로 이어졌다. 말도 안된다며 머릿속에서 쫒아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구름 속의 달처럼 계속 조금씩 빛나는 그 생각. 그 잠깐의 빛에도 난 깜짝 놀라 격렬하게 반발했다. 인정할 수 없다기 보다는 인정하기 싫었다. 이 생각을 한 시점에서 난 패배했다. 그래, 이 소설을 결국 그 작가와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어쩔 수 없이 넋두리처럼 그 이름을 말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G. G. 마르께스. 백년 동안의... ...

니, 이제와서 인정 안 하는 것도 우습지만 말도 안된다고 난 딱 잘라 말하겠다. 대체 어떻게! 저 작품을 떠올리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역시나 내 주장은 이미 힘을 잃은 것 같다. 이 책은 정말로 한국 문학에 빚진게 없어서 떠올릴 국내소설이 없다. 결국 자연스럽게 백 여 년에 걸쳐 3대나 이어지는 이 이야기에서 아우렐리아노 집안의 백년사(百年史)가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패했다. 하지만 변명은 아직 남아있다! 이 책이 저 위대한 유산에 비견된다고 인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하 고독-을 누군가에게서 듣고 온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 필사를 위해 자신의 맛대로 소설화 시킨다면 아마 그 소설의 제목이 바로 고래가 될 것이다. 고독이 될 수 없지만 그 고독과 끝이 닿아있는 이야기. 정말 약간인지, 아니면 아주 맞닿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래의 물줄기와 백년의 물줄기는 확실히 어떻게든 서로 스쳐지나간다.

 455쪽이라는 적지도 많지도 않은 분량의 소설은 고독과 비슷하다. 대하소설로 해도 모자람이 없는 이야기를 단 한권에 넣어 그 미칠듯한 에너지는 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고독은 그 농밀함이 지나쳐 미쳐버린 광기가 흐린 안개처럼 독자를 감싸 순식간에 씹어삼켜버리지만 고래는 강렬한 에너지를 유감없이 뿜어내며 독자를 미친듯이 휘날리게 한다. 깊고 깊은 블랙홀과 몰아치는 태풍. 고독과 고래의 차이다. 농밀함의 차이는 극과 극의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역시 고독에 백 열 세표 더 주겠다. 고래는 한국적이고, 가벼운 터치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재미는 더욱 보장되어지지만 내용과 밀도에서 밀려버린다. 고독이 짙은 안개가 낀 난생 처음 오르는 산이라면 고래는 그 산의 중간에 있는 따뜻하고 작은 오두막이다. 그나마 몸을 녹일 난로가 있고, 먹을 간식이 남았다. 거기다가 멋들어진 이야기꾼까지 만나버렸으니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하지만 역시 직접 산을 타는 것보다 그 감동은 덜할 수 밖에 없고 내용은 가벼워질 수 밖에 없다. 반드시 시대를 끌어안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독은 같은 모습으로 시대까지 같이 끌어들였고, 고래는 좀 더 인간에 집중하면서 시대를 배제했다. 그리고 난 그 인간에 대한 치열함도 마르께스에게 여든 두표 더 던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고래에서 고독의 가능성을 보았다. 세계 문학의 중심이 유럽에서 남미로 이동했다는 말이 있다. 확실히 중심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그 움직임이 30년 뒤 태평양을 건너 이 작은 반도에 머물게 되더라도 난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난 오늘 그 30년 뒤의 결과를 만들 새로운 시작이자 원인을 보게 된 것 같으니까. 천명관의 고래는 분명 한국 문학에 던져진 놀라운 힘이다. 그는 한국 문학을 확장시켰다. 어쩌면 앞으로 30년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 시대로 인해 세계의 중심이 우리 이 땅에 서게 된다면 난 여유롭게 말하겠다."30년 전 고래 때부터 알아봤었다니까."

지금 이 순간, 난 고래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보는 순간 깜짝 놀라 아무말도 하지 못할 엄청난 무언가를.

'책과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르만 헤세의 인도여행, 감상.  (0) 2009.01.08
심플 플루트 A to Z, 감상.  (0) 2009.01.08
삶은 ... 여행 이상은 in Berlin, 감상.  (0) 2009.01.05
왜 날 사랑하지 않아? 감상.  (0) 2009.01.04
THE GAME, 감상.  (0) 200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