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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초콜릿 코스모스, 감상.

by UVRT 2008. 12. 12.


초콜릿 코스모스

저자
온다 리쿠 지음
출판사
북폴리오 | 2008-05-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모두가 꿈꾸는 화려한 무대, 오디션의 막이 열린다! 독자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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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나서 힘이 쭉 빠진다. 한껏 긴장된 정신과 몸이 책을 탁- 덮는 순간 풀려버렸다. 그리고 잠시동안 의자에 늘어져서 생각해본다. 

"정신없이 따라가고 나서 어느샌가 고개를 들어보니 끝나버렸다. 나, 언제 이만큼이나 와버린거지."

내주게 잘 달리는 주자가 정말 부드럽게 나를 이끌어줬다. 500쪽에 달하는 책은 순식간에 넘어가고, 쪽수를 확인할 때마다 너무나도 아쉽다. 온다 리쿠의 소설 중 최고라고 꼽기는 아직 주저되지만 멋진 소설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책, 대단하다.

재. 하늘에서 주는 재능을 지닌 사람. 인간으로서는 따라갈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따라갈 생각조차 버릴 수 있는 재능이라는게 존재할까. 뒤에서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아니, 그럼 여태까지 실패한 사람들은 모두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란 걸까.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몰이해하며 아름다운 울림이다. 천. 재. 이 책은 그런 천재를 말하고 있다. 연극이라는 무대로 옮겨졌지만 세상 모든 천재들과 비유될 만하다. 모름지기 천재는 배우지 않고도 알며 모르고도 행할 수 있다 하였다. 아, 대체 그런 사람이 존재는 한단 말인가? 그런데 문제는 정말 존재한다. 특히 감수성이 필요한 문학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다행히 나는 아직 그런 천재를 직접 보지 못해서 아직도 글 써본다고 이곳 저곳 찔러보고 있다.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둔재가 노력도 하지 않고 아직도 이 바닥 저 바닥 기웃거릴 수 있는 건 하늘의 축복이다. 그리고 천재는 바라볼 수 있는 걸로도 축복이다.

천 재가 아니라도 좋다.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정말 천재를, 정말 위대한 업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한 축복이자 행복이다. 만약, 정말 만약 내가 노력해서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지는 못해도, 내 눈앞에서 누군가 페르마를 증명했다면. 내가 그걸 봤다면. 내가 수학자라면. 내가 페르마의 가치를 정말로 이해하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면. 난 증명되는 순간 신을 찾을 것이다. 

"신이여, 저 사람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도 그렇다. 천재가 있다. 그리고 천재를 바라본다. 사실상 주인공인 배우보다는 각본가에게 더욱 감정이입이 된다. 그리고 절절히 느껴진다. 평생에 걸쳐서라도 후대에 길이 남을 수 있는 환상의 문학을 쓸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연기해 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지음(知音)이라는 말도 있다. 내 문학을, 각본을, 나를 나보다도 더 깊게 이해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난 그 사람을 위해서 글을 쓰고 싶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 글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보고 싶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녀석들이 내 글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보고 싶지도 않다. 정말 위대한, 그런 천재가 있다면 난 그에게 작품을 바치고 싶다.

"이 작품은 당신을 위한 나의 혼입니다."

리고 다행이 그가 내 작품을 정말 내가 꿈꾸던 그 이상으로 완성해준다면 난 눈물을 흘리며 두손을 모아 신을 찬양할 것이다. 신이여, 날늘 태어나게 해준 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저 사람을 보내주신 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신이여. 신이여. 그대는 진실로 있었던 것이로군요. 천재는 그렇다.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한다. 어쩌면 천재는 신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세상에 내려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를 웃게 할 수도, 울게 할 수도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알아 전지며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전능이다.

이 책은 그런 천재의 이야기다. 자신이 천재인지도 모르는 천재의 이야기. 그리고 그 천재를 바라보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천재를 발견하고 그 천재와 함께 나아가려는 천재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행복하다. 천재를 하나도 아닌 둘이나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자발적으로 조종하는 사람을 우리와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천재"

고. 난 이 책에 조종당했다. 그리고 책은 이렇게 천재를 말한다. 초콜릿 코스모스. 갈색 우주. 어디에든 어울리지만, 그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빛나고 아름다우며, 발견 했을 때 우리에게 경이를 준다. 그래, 세상은 나 빼고 다 천재고, 그래서 축복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