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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감상.

by UVRT 2008. 12. 11.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저자
정민 지음
출판사
김영사 | 2008-04-2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우리 옛 선인들이 남긴 가훈과 유언 31편을 한자리에 모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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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읽는데 간만에 엄청 힘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게 서로 이어지는 글도 아니고, 한 주제로 관통되는 것도 아니라서 부드럽게 넘어가는게 힘들다. 유언과 가훈이라는 진중한 주제를 사용해서 그런지 역시나 엄청 교훈적이다. 거기다가 글의 종류를 통일하여 올린 것이기에 내용도 이것, 저것. 하지만 이 책은 적어도 3번은 읽어봐야 될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 집안을 지탱하고, 한 사람이 생의 끝에서 자식에게 전하기 위해 하는 말의 가치와 무게는 대단하다. 거기에 선비들 특유의 정신 세계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그 말을 풀어낸다. 내일 사약을 받을 것을 안다. 내일 죽을 것을 안다. 곧 죽을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선비. 올곧게 살아갔다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걸어 하늘에 한점 부끄럼이 없다 생각한다면 당장 내일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 죽더라도 후회가 없는 것이 선비의 삶이다. 모든 사대부의 삶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으로 슬퍼할 부인과 자식, 부모를 걱정할 따름이다. 자신때문에 타인이 슬퍼한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못 견디게 가슴아파했다.

라톤이여. 소크라테스여. 그대들이 말하던 진정한 철인들이 여기에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에 의연히 몸을 맡기는 철인들이 있다. 직언과 정언을 위해서라면 죽음조차 불사하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그 혼을 바라보노라면, 그리고 그 혼의 외침으 듣노라면 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선비들이 인간의 정마저 잊고 의만을 좇은 것도 아니다. 자식을 걱정하고, 부인을 걱정하고, 며느리와 딸들을 걱정하여 죽은 뒤에도 안타까이 여기는 그 글들을 읽노라면 조선 사회의 가족이란 우리 상상 이상으로 끈끈한 집단이다. 노비 종복에게까지 훈령을 적어주는 그 꼼꼼함과 자신의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그 담담한 경계 속에서 선비의 정신이 무엇인지 절절히 느낄 수 있다.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선대의 유업을 더럽히지 마라. 명예와 돈에 집착하지 마라. 의로 사람을 대하고 선으로 행하라. 독서하여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라. 중도를 지켜 올곧는 사람이 되어라. 조선 이래 몇백년이 다시 흘렀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저렇게 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 시대부터 말해온 저 말들의 가치는 약해지지 않았다. 신독(愼獨)이라 하였다. 홀로 있어도 그 몸을 삼가라 하였다. 선비들은, 아버지들은,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설사 내가 죽어 너 홀로 남더라도, 가문과 자신을 생각해 삼가라."

홀로 있더라도 삼가라. 세상은 결국 홀로 남겠지만, 내 옆에 그 말은 남아 있을 것이다. 언제나 삼가는 사람이 되라는 그 따뜻하고도 엄한 말씀이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런 확신을 준다. 이 책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