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에서 나온 책으로 시작에서 나온 책이 아닙니다. 웹진 '거울'의 필진들이 대부분으로 사실 나는 잘 모른다. 이름도 다들 생소하고, 그들의 작품도 다 생소하다. 이렇게 판타지와 동떨어져서 살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난 왜 이런 단편선에 나올 정도의 사람들을 알지 못하나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뭐 어쩌랴,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언제 내가 작가 알아보고 책을 산 것도 아니고, 재밌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책이 눈 앞에 있다면 먹어주는 것이 독자의 본분. 그래서 자근자근 씹어봤다. 담백하다.
사실상 한국 환상문학이라고 말할 정도의 맛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들 잘 짜여진 소설이고 재능있고 멋진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본인 취향에 맞는 책은 백서현, 배명훈의 글 정도가 다일 것이다. 반타작도 못 건지다니. 새삼 본인의 편향적 취향과 저질스러운 이해능력과 바닥을 기는 감수성에 통탄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마산 앞바다라던지, 크레바스 보험사, 초록연필, 콘도르 날개 정도라면 꽤나 괜찮은 점수를 줄 수도 있겠지만 마산 앞바다는 뭔가 남미적 환상문학의 느낌은 나지만 분위기 형성이 잘 되지 않았다. 바닷가 사람이 아니라서 그럴까. 어쨌든 공감대 형성에 나는 실패했다.
크레바스 보험사. 센스도 좋고, 괜찮은 설정이었지만 그게 다다. 약하다. 단편은 짧은 만큼 결말에 강렬한 무언가가 있거나 내용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느낌의 단편은 좋아하지 않는다. 역시 취향의 패배.
초록연필. 괜찮은 내용이지만 내용이 서로 잘 섞이지 못하는 것 같다. 동떨어진 내용이 서로 약간씩 어긋나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마지막에 270만 정도가 한방에 쓸려버리는 결말은 좋다. 근데 결말만 좋다.
콘도르 날개. 우와아. 마지막 1장을 남겨두고 난 엄청나게 기대했다. 오오. 재밌는 이야기로세! 재밌구나! 근데 마지막 한장의 결말이 맘에 안들었다. 초록연필과 딱 반대다. 이건 결말이 안좋다. 그래서 다 안 좋다.
이렇게 몇개를 취향 안맞다고 대놓고 말했으니 이제 내가 재밌게 봤다는 윌리엄 준 씨의 보고서, 할머니 나무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취향에 위배되는 점이 없다는 것에서 난 백서현의 윌리엄 준 씨의 보고서를 이 책에서 제일 재밌다고 꼽겠다. 난 동화가 좋다. 할머니 나무의 결말은 맘에 들지 않는다. 물론 치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래도 그런 결말은 싫다. 깔끔하게 날아가던지, 아니면 쿨 하게 끌어안는 그런 면이 내용에 좀 더 있었다면 난 작품 두개를 최고로 꼽았을 것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왠지 판타지 단편이라기 보다는 SF의 느낌도 상당히 들었다. SF와 남미 환상문학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이 책이기에 얼마전에 읽은 남미 환상문학 단편선인 탱고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에 크게 만족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필진들이 전부 거울의 필진에 가까워서 솔직히 거울의 회지같은 느낌도 배제할 수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같은 동인들의 느낌이 나게 되며, 기획도 결국 거울에서 하게 된 터라 왠지 대학 축제 같은 곳에서 괜찮은 문학 동아리의 회지를 산 것 같은 느낌을 아직도 떨칠 수가 없다. 프로같은 사람들이 쓴 것 같은데, 왜이리 뭔가 부족한 것 같을까.
분명 재밌게 봤는데, 허전하다.
'책과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자병법, 감상. (0) | 2008.10.26 |
---|---|
은상어, 감상. (0) | 2008.10.25 |
왕비의 이혼, 감상. (0) | 2008.10.21 |
고통받는 몸의 역사, 감상. (0) | 2008.10.21 |
GOD 천상, 감상. (0) | 2008.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