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 했던
만화영화 '이상한 나라의 폴'을 본 세대라면, 김애란의 글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달려라,아비'는 낯이 익어
보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낯설지는 않으리라. '달려라, 아비' 그렇게 거창한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소소한 책도 아니고 적당한
자유감과 우리가 느끼는 정체불명의 신비로운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멀리 웅크린 어둠의 모호함이 전해주던, 알 수 없는
것이 전해주는 미지(未知)의 껄끄러움이 찬찬히 펼쳐진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끝까지 알 수 없다. 다만 더 이상 두렵지 않을
뿐이다.
삶은 편견과 오해의 연속일 것이다. 멋진
영웅이 없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고, 설사 있더라도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그정도의 소소한 패배의식에 젖어야만
현대를 물살을 가르고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알지못하는 사이에 굴복한 콘크리트의 규칙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햇볕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그 틈바구니에 하루하루 쌓인 먼지 같은 진실들을 김애란은 힘껏 날려 올린다. 흐릿한 손전등을 켜고,
억지로 그 곳에 몸을 우겨넣는다.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먼지와 쓰레기 뿐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알지만, 그곳이 궁금하다.
콘크리트와 철근의 사이에 존재할 싸늘한 도시의 바람은 분명 그곳에서 노숙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는 넓은 도로에 진실은
없다.
사람은 이렇게나 많아졌는데 관계는 너무나도
줄어들어버렸다. 밧줄처럼 튼튼해서 굴레처럼 느껴졌던 관계의 속박들은 이제 거미줄처럼 우릴 귀찮게 할 뿐이다. 세상은 나를
힘들게하고 지치게 하고 괴롭게 할 뿐이다. 그래서 무섭다. 나는 세상을 도통 모르겠고, 세상은 내게 친절하지 않다. 이런 두려운
곳을 묵묵이 헤쳐나온 사람들까지도 이젠 괴물처럼 보인다. 이 곳에서 멀쩡히 살아가는 당신의 뒷모습이, 나는 너무나 두렵다. 나는
이렇게나 괴로운데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당신의 친절함을 경멸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나 비참하고 슬픈데 왜 나만
그럴까. 근데 남들도 그런지를 물어보는 건 역시나 무섭네요.
소심한 현대인을 위한 대피 안내문을 만들어야 한다면 저는 아마 반드시 김애란에게 부탁할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소심한 제가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는 말투로 차근차근 안내해줄게 분명하니까요. 물론 제가 소심하다는 건 극명하게 드러나겠죠. 아프지 않게
상처를 드러내는 방법을 압니다. 간지러운 딱지를 손으로 긁을 때 느껴지는 상쾌함이 이 글에는 존재합니다. 마음 어딘가는 항상
간질간질하지만요. 세계는 여전히 그대로 있는데, 이상하게 하늘이 빙글 돌면서 햇볕이 들지 않던 곳에 햇볕이 들게 됩니다.
놀라워라, 드디어 제 구멍에도 빛이 들어버렸네요. 그런데 상상했던 거랑 좀 많이 다른데 슬픕니다. 눈 부셔요. 더워요. 그리고 내가
너무 선명하게 보이잖아! 흐릿하던게 좋다고! 나를 직시하게 만드는 힘. 그리고 도피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직시하지만,
도피할 수 있게 해주는 여유가 그야말로 환상적이군요. 선문답 같은 세상은 모두가 진짜인지 알지만, 압다물고 '그건
거짓말이지.'라고 말하면서 겉으로만 안심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소설 전체에 부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긴장된 세계와는 딴판으로
멍청난 내가 싸돌아다니고 있죠. 그리고 이상하게도 제 주변은 저랑 똑같이 다 멍청해요.
어릴 때 불현듯 현관문을 열기가 무서워질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부모님이 아니고, 아마도 외계인이 가죽만 뒤집어 쓰고
있는데 오늘 저녁상에 올라올 고기 반찬은 제가 될 것 같았거든요. 집이 너무 조용하면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빈 자리는 누구나 채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채울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집이 비어 있다고 느끼는게 싫었습니다. 가끔 TV가 갑자기 켜지고 문이 덜컹 열리지만, 그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뭐가 되건 제가 이해할만한 물건이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있다는 거잖아요? 적어도 '빈' 것은 아니니까 안심입니다.
말을 걸어도 대답해주지 않고, 보이지도 않고, 저와 리모콘을 다투는 가족처럼 제가 TV를 끄고 의자에 앉으면, 다시 TV를 켤
뿐이죠. 그럼 저는 다시 끄면 되고, 짜증도 내보고 나중에는 니 맘대로 하라며 화를 내고는 TV를 끄지 않았어요.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오시면 보지도 않는 데 TV 켜놓고 전기 낭비한다고 혼났죠. 좀 더 노력해서 꺼볼 것을 그랬나 봅니다.
인간은 개인화 되어가고, 도시 속에서 파편화 됩니다. 의미는 없어지고 가치는 떨어지죠. 나와 당신 사이를 메워주는 건 분명 자본주의
사회니까 돈이거나, 민주주의 사회니까 정의, 자유, 진실 뭐 그런 것들이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그 사이는 공허하게 비어
있습니다. 파편이 되어버린 나는 톱니바퀴조차 되지 못해서 맞물리는 곳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저 덩그라니 한 가운데에 버려져
있죠. 김애란은 그런 우리를 하나 하나 줏어서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맞춰보죠. 우스꽝스럽게도 해보고, 재밌게도
해보고, 아귀가 맞는 곳을 찾아서 조각들을 이리저리 움직여 봅니다. 당신과 나 사이가 비어 있다면, 굳이 사이를 채울 것 까진
없겠네요. 당신과 내가 이어지면 될테니까.
눈물같이 즐거운 이야기들이 지나갑니다. 의미 없던 그 날들에 세상에 혼자 있던 것 같은 빈 세상에 나 홀로 있던게 아니라 누군가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외롭고 당신은 내 눈에 도통 보이지도 않고 내 말에 대답도 해주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 어느정도 마음이
놓입니다. 아마 그 때의 빈 곳에 당신이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빈 곳에도 당신이 있을 테니까요.
아무도 없는 빈 곳에 시선을 던져보아요. 그리고 그 빈 곳에 웅크리고 앉아 아무 의미 없는 흙장난을 시작해보죠. 그리고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떠납시다. 앞으로도 괴롭고 슬프고 눈물이 절절이 흘러내릴 정도로 아플 겁니다. 변하는 것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그
빈 공간에 누군가 다녀간 온기의 자취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내게 따뜻한 희망을 줍니다. 이제 빈 곳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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