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50 단어
소설이나 일본의 휴대폰 소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것보다는 좀 더 실험적인 소설 양식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단편(원고지 70~80매 내외) 보다 더 짧은 엽편(원고지 50매 미만)보다 더 길이를 줄인다는, 어찌보면 '소설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한 장대한 고뇌를 필요로 하는 책이다.
소설이라는 예술 분야는 과연 분량에 영향을 받는가. 라는 게 바로 이 책의 실험 주제인 것 같은데 나는 모르겠다. 큰 그림이건 작은
그림이건 엄청나게 작은 그림이건 간에 그건 예술일 것 같다. 그런데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생각해본다면 그건 과연 음악인가?
좋다, 그게 음악이라면 우린 70매의 제목만 적힌 원고지를 들고도 '문학'이라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부를 수 없다면, 왜 그런가?
한
없이 근본적인 것에 대한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작가들은 이 책을 펴냈다. 한문에서 한글로, 한시에서 소설로 변화하고 단편 소설에서
장편 소설로 이관되는 그 시대의 흐름에서 이제 세상은 스마트폰과 휴대폰, 그리고 인터넷 웹브라우저가 책을 대신하려 한다.
인터넷과 게시판, 그리고 웹사이트에서 보기 좋은 편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휴대폰으로 보기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는
지금 문학의 단편화를 요구하는가 장편화를 요구하는가. 대체 이 시대는 소설에 무엇을 바라고 있단 말인가.
단 10줄의 글은 소설이 될 수 있는가? 10분만에 볼 수 있다는 엽편보다 1/2 짧은 이 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소설이란 대체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소설에 있어 분량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인터넷 소설 카페에서 최저 분량을 지정하는 것은 그렇다면 반소설이자 반문학으로 볼 수도
있단 말인가. 이 '미니픽션'들이 소설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면 소위 최저 분량입네 하고 내세우는 규제들을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소설의 '물리적 틀'에 대해 힘든 도전을 한 이 책의 정신을 나는 높이 산다. 그리고 나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학과 소설에 있어 분량이란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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