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인가. 이정도
밖에 못하는데 이기호란 말인가. 단편에 비해 그의 장편은 확실히 별로다. 장편의 호흡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면 단지 연재물이었기
때문에 그가 실험적으로 작품을 썼다는 말인가. 그의 글들이 지니던 묘한 긴장감을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묻고 싶었다. 이 책이 정녕 이기호란 말인가? 너무 짧게 끊어지는 호흡은 왠지 책 자체에 깊은 몰입감을 주지 못했다.
아
무리 멋지고 대단한 분들이 이 책이 대단하다고 말해도, 나는 갸우뚱 대며 '글쎄에~?' 라며 말 끝을 흐릴 것 같다. 그런 점을
제외한다면 이 곳에 존재하는 너무 곧아서 짜증이 나는, 그리고 그래서 증오받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단지 모를 뿐이고, 그래서
배운 대로 말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묘하게 옳다. 그들의 세계에서 통하는 논리는 음험하지 않고 어둡지 않으며 감춘 것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맑은 그 더러운 두 명은 사과를 대신 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옆에 이런 인간들이
있었다면 쇠파이프를 집어서 후드려 패버렸을 것이다.
죽은들 무슨 상관이랴?
아니 그 전에 대체 살아있어서 뭐하자는 거지? 인간은 왜 살아가는 걸까. 죽어도 괜찮은 인간이 있다면 반대로 살아도 괜찮은 인간 또한 있을 터인데, 문제는 내가 과연 살아도 괜찮은 인간인지 판단하는건 내가 아니다.
평
생 사과만 하면서 살테냐고? 어차피 너나 나나 남에게 사과 한 번 제대로 듣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사과는 받아서 뭐하고 사과는
해서 뭐하냐. 그리고 대체 인간은 서로 사과하지도 받지도 않는다면 우린 살아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마음의 교류? 웃기네.
사랑? 개나 주라 그래라. 우정? 지랄한다. 뻐킹 애스홀이다. 책에는 음험함이 흐르기 시작한다. 책 속의 사람이 너무 올곧아서
오히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사과'
나
는 사과를 잘 하고 있는가? 그전에 사과를 하고는 있는가.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불편하다.
더럽게 느껴진다. 인물이 아닌,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지만, 사람을 자신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이 하찮다는 것을 알게된다면 인간은 얼마나 슬퍼질 것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란 인간은 대체
어떻게 죽어야 죗값을 고스란히 치르게 되는 것일까.
너
무나 명백해 보이는 색의 대비. 책은 하얗고 글씨는 까맣다. 그리고 나는 회색이다. 어느 것하나 명확히 하지 못하고 오늘도
느적거리며 뒤로 미루고만 있다. 한다고 했던 것은 하지 않고 해야 할 것은 게으르게 던져놓는다. 잘못한 것에 대해 후회는 하면서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사과를 하지 않는다. 무조건 내가 옳다고 믿으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하다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아서 말조차 섞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다 말하면서 내가 우위에 서고 싶어한다.
직위에 연연하고.
체면에 연연하고.
나이에 연연하고.
그
렇게 허세를 부리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 마음 속에서 사람간의 차별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나는 사과조차 잘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어느샌가 나는 책이 싫어진다. 갈기갈기 찢어서 불태워버리고 싶다. 이런 책 따윈 쓰레기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행간은 읽히지 않고 이기호에게 기대하던 차갑고 적나라한 폭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던 싸늘한 냉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얗게 빛을 반사하는 광어의 살을 저며내는 반짝이는 식칼의 예리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 그렇다. 그렇다고 말하겠다. 책은 쓰레기다. 난 이 책이 싫다. 겨우 이따위를 하려고 이기호는 이 긴 이야기를 했단 말인가. 그래 사과를 잘하고 맞아 죽고 패 죽이고 목 메다는게 대체 어쩌라는 건지 도통 알고 싶지도 않다.
난 이 책과 작가에게 사과하지 않겠다. 누군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사과하지 않아도 사과 받은 걸로 해주는 그런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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