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TH다. 내가 원서까지 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발되버린 그 책. 가끔
힘들게 힘들게 구했는데 어이없이 정발이 되거나, 붐을 타서 구하기 쉬워지는 책들이 있다. 내게 있어서 반지의 제왕, 호빗, 모모
등이 그랬고 지금 GOTH가 거기에 또 일조를 해주었다. 난 이런 책이 좋다. 직접적으로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지는 걸
찌릿찌릿하게 느끼게 해주는 책도 좋지만 이렇게 은근히, 마치 거대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무언가에 지긋이 온몸을 눌러주는 듯한 느낌의
책도 좋다. 비록 내가 그 사이에서 터져 죽더라도 아마 그 느낌은 정말 좋지 않을까? 죽기 직전이 되면 또 아둥바둥 대면서
살려줘를 외치겠지만 그건 그 때의 문제다. 그 느낌을 상상하는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런 죽음의 순간도 너무 즐거울 것 같다.
이
책은 아마도 생명이라는 것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힘을 지닌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 안된다고 배웠지만 어쩌면 죽인다는 것은
너무너무 즐겁고 재미나는 일이 아닐까? 예전에 어떤 책을 감상하면서 말했던 적이 있다. '어떤 동물'을 먹지 않는 것은 맛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먹지 말자고 정해서가 아닐까 라고. 그리고 난 이 책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간걸 말한다. '마구 죽이는 것을 막은'
이유는 그게 너무너무 재밌는 일이라서가 아닐까? 소위 말하는 정신의 어디 한면이 부서진 사람만이 재미를 느낄지 모르겠지만-어쩌면
마구 죽이다보면 누구든 간에 그 면이 부서질지도 모른다.- 근본적으로 죽인다, 라는 행동은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재밌을지도 모른다.
생명은 바둑판의 바둑알과 같고 나는 그것을 놓는 절대자의 입장에 놓이는 것이다. 바둑이건 장기건 모두 사람을 죽이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전차는 병사를 죽이고, 포를 쏴 기병을 잡는다. 군사는 사방귀에 거점을 정하고 공성과 수성을 하며 대마의 허리를 끊어
병력을 잡아먹는다. 근본적으로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여 무언가를 '죽이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놀이다. 우리는 지금도 컴퓨터
속에서 '무언가'를 죽이고 있지 않는가?
죽음은
사실 굉장히 일상적인 것이고 산다는 것은 의외로 힘든 일임이 틀림 없다. 사실 장례식장에는 항상 누군가 있고 화장터의 화구에는
누군가 들어간다. 오늘도 땅 속에 눕는 이가 몇이겠는가. 그리고 오늘도 스스로 죽는 사람은 몇이겠는가. 삶은 얼마나 힘들고,
죽는다는 건 얼마나 쉬운가. 그러니 그런 것에 '재미'가 있다고 한들 죽음이 더 경박해지기는 하겠는가. 재미 없다손 치더라도
얼마나 쉽고 평범한 이야기인가. 누군가 죽는다는 것은. 그리고 내가 죽는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은 공포가 되겠지만, 그런 것따윈 일상의 습관이 되버릴 수도 있다. 아무도 지금 5분 뒤에 자신이 살아있을지 죽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 글을 올린 내가 내일도 글을 올릴지 안 올리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내일 죽을지 살지는 어쩌면
겨우 그런 정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일 점심으로 라면을 먹을지, 내일 점심에 목을 매달지는 전적으로 그 때의 기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너무나 재밌을지도 모른다. 놀이가 재밌는 이유는 아마도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기 때문이 아닐까.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것은 '가끔 하고 싶지만' 하고 싫을 때 안해도 되는 것들은 '자주 하고 싶어' 진다.
난 내가 죽기 싫을 때 죽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것들이 너무나 일상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누군가 죽고, 누군가 죽이고, 그리고 내가 무언가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고. 그리고 누구도 관심없다고. 어제 죽은 소말리아의 아이에게 내가 관심 없듯, 나의 죽음에
세계는 무관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묻고 싶다.
'재미마저 없다면 우린 왜 죽어-여-야 할까.'
신이 우리를 만들었다면, 그는 어쩌면 마지막에 이르러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죽음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읽고 있으면 굉장히 즐거워지는 책이다. 난 이 책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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