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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비인비검, 감상.

by UVRT 2010. 1. 1.



비인비검. 1: 검주

저자
자하 지음
출판사
파피루스 | 2009-07-2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천하에 전해 내려오는 다섯 자루의 신검. 그들이 선택한 주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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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내용이 부실하다. 자하라는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지만 '남궁세가소공자'라는 이름은 몇 번 들어봤다. 무협과는 몇 년간 거의 담을 쌓아버린 최근의 내 독서편력을 생각하자면 분명히 이 작가는 유명하다. 인터넷에서는 어딜 가도 이제 양질의 작품을 보기 힘들고 거장은 없다. 그런 와중에도 그나마 이름을 근근히 알리고 있다면 분명히 좋은 작품이었을 것이고 좋은 작가였을 것이다.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인비검은 꽤나 참신한 소재를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지부진하게 내용은 전개된다. 인검이라는 소재가 꽤 흥미로웠지만 전반부에 서술되던 중요도에 비해 설명이나 그 무게가 충분히 부각되지 못하고 오히려 조역으로 전락한 후반부는 소설의 부실한 내용을 더욱 허망하게 만들었다. 6권이나 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했고 결국 소설은 잔재미는 있을지라도 큰 흐름을 잃어버렸다.

전개 의 흐름이나 초반부의 여러 설정들을 후반부에 충분히 소화하지 않은 점을 볼 때 아마 작가는 최하 10권 분량의 내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완결 후 출판하는 방식이 아닌 연재 후 출판하는 현재의 방식이 가진 한계에 부딫힌 것으로 보여 많이 안타깝기도 하다. 아마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이 글은 처음에 던진 소재들인 '모든 검을 쥐어본다', '검에 얽힌 비밀을 스스로 알아낸다', '4대 세력 간의 팽팽한 심리전과 세력전' 등을 충분히 풀어내지 않았을까.

소설에서 소화하지 못한 '모든 검을 쥐어본다'와 '검마다 2번째 능력이 있다.'라는 소재가 있는데 처음 빙검을 쥐어보고, 청수검에서 한번 실패하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언젠가 주인공이 모든 검을 쥐어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작중 흐름에 큰 중심이 될 것이라 믿었는데 차후 사망검주의 등장 때는 이 '검을 쥐어본다'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존재하지 않는 진행과 무림맹과 얽히는 과정에서도 '청수검을 쥔다'라는 것 조차 무시하는 진행은 1~2권의 시점에서 주인공의 가장 큰 2가지 목표 중 하나를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작중에서도 분명히 언급되던 '모든 검에는 2번째 능력이 있다.'인데 진화검이 '불칼'이고 빙검이 '얼음칼'이고 청수검 '물칼'인데 청수검의 2번째 능력은 분명히 치유마법이라고 언급되었다. 하지만 결국 작중에서 진화검과 빙검, 사망검의 2번째 능력은 전혀 나오지 않고 싸그리 분질러진다. 불지르고 얼음 얼고 정신계 마법 쓰는건 2번째 능력이 아니냐, 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청수검이 물질 하는 걸로 봐서 그건 그냥 1차적 고유 능력이다. 자신의 속성과 관계가 있되 뭔가 특수한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언급된 바가 없다.

거기다가 하오문이라는 존재에 반권가량이나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오문은 아무런 도움도 안되고 소설적으로도 별반 쓸모도 없었다. 전체 소설의 1/12을 투자한 장치를 전혀 활용하지 않는 점 또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거기다가 하오문과의 협력 시에 전해준 정보는 '적우현은 빙검도 같이 사용할 수 있다.'였다. 결국 이걸 가지고 하오문은 뭘 한건가. 아니, 이걸 가지고 뭘 할 수 있긴 한건가. 일반적인 수순이라면 당연히 하오문과 함께 움직이거나 하오문을 통해 정보를 제공받고 적우현은 자신의 무력을 제공해야 한다. 저런 도시전설 같은 정보로 하오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중소방파에 찾아가 '쌍검 사용자 적우현이 우리 배경이니 개기지 말고 합류하시오.'라는 협박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전혀 증명이 안되므로 협박용으로도 약하다. 그리고 중소방파의 경우도 소설 전체에 걸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다못해 마지막 전투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냐 이거. 이 하오문 부분을 다 덜어내버리고 간략하게 다른 방식을 통해서 적우현이 정천문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다. 정말 간단하게 노숙 때 표국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곡의 습격을 받고-혹은 적인의 습격- 피폐해져 무림맹의 영역에 가까워졌는데 그 때 무림맹의 찌질한 포위로 불 한번 질러주고 입에서 피흘리면서 '정천문으로 가자.'라는 마지막 대사를 읊어도 하등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하오문은 비중이 없다. 뭔가 중소방파를 연합하여 거대 세력에 도전하는 위대한 주인공의 인생역전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냥 칼 두자루로 끝냈다.

그런데 주인공 정도면 진火검과 氷검이라는 이름에서 사망검은 몰라도 청水검은 뭐하는 놈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텐데 청수검의 능력은 전혀 쓰지를 않더라. 뭐, 사곡습격에서 사망검도 뭐하는 놈이지 깨달았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에게 새겨져 있던 마법에 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물로 하는 마법 중에서 공격계는 전부 빙계로 통일되어 있었다거나... 전적으로 이건 오르휘나 탓이다.

물론 적인의 성격 변화라던가 사망검주의 가짜 대적자 역할은 꽤나 멋졌고 인물 하나하나는 재밌게 잘 살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인물을 이어주는 내용이 어설프고 맛을 살려줄 소재조차 어설프게 사용했다. 결국 인물들은 제각각 비중 차이도 없이 둥둥 떠오르거나 가라앉아 버리고 소설은 전체적으로 어중간한 분위기만 남겨버렸다.

결국 세력전도 개뿔 없고 마지막에 왠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와서 5권 동안 고민하던 모든 문제를 자기 입으로 말해주고 주인공도 스스럼 없이 믿어준다. 그리고 모두 모두 행복해졌다.

자하라는 작가는 분명히 재능이 있다. 한 두권도 아니고 이제 이정도 출판을 했으면 어느정도 신진작가의 대열에서는 벗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6권이나 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이제 작가가 중견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설사 판매량 부진으로 조기 종결이 되더라도 내용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활용 능력이다. 이 정도 책을 냈으면 경험부족이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도 않을 것이고 독자는 이제 자하라는 작가에게 어느정도 성숙한 책을 기대한다.

그 기대에 걸맞는 다음 작품을 내줬으면 한다. 아무리봐도 조기종결된 느낌이 너무 강해서 정말 아쉽다. 이 책은 한국 무협계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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