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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콘트라베이스, 감상.

by UVRT 2009. 11. 15.


콘트라베이스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1993-03-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 책상태 - 14쇄 발행본 - 겉 : 모서리 조금 헤짐. 약간...
가격비교


뭘까. 읽고 이틀이 넘게 지났는데 콘트라베이스라는 이름은 남아있지만, 뭐라고 감상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모노드라마를 싫어하지도, 독백체를 꺼려하지도 않는데 이상한 일이다. 글을 읽고 감상을 적기가 이렇게 더디다니. 감상문을 쓰지 않은 것을 까먹은 경우를 제외하면 귀찮아서 안 적는게 가장 큰 이유였고, 그것 외에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난 콘트라베이스에서 새로운 상황을 맞이했다. 읽고 나서 좋다고 생각하는데도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 글은 어떤 평가를 해야 하는걸까. 좋은 글이라고 하기엔 감상이 남지 않으니 좋다고 할 수 없다. 나쁘다고 하기에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그야말로 모순이다.

그래 도 다행이도 약간의 감상이 남아 있고, 난 그것으로 감상문을 적을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 글을 읽은 것이 다행이다. 멋도 모르고 연습도 안 했을 때 이 글을 읽었다면 난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일주일은 넘게 보냈을 테니까 말이다.

모노드라마라는 말이 완벽하게 들어맞을 정도로 이 책은 나와 화자 사이의 모든 것을 차단한다. 극본의 지문 같은 행동 묘사를 하면서 독자가 화자에게서 고개를 돌릴 수 없게 한다. 이 세계는 소리도 색도 없고 하물며 맛도 향기도 없다. 싸늘하고 밋밋한 감정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화자에게 공감하는 것 뿐이다. 많은 클래식 음악들이 나오고 여러가지 지식들이 나열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 없다. 모든 장치는 그에게 집중하기 위한 것이다. 거기다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인지 명예인지도 알 수 없다. 만족감이 있는 듯 하지만 만족하지 않고 사랑을 하는 듯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 있어서 흐릿한 그는 열화된 흑백 VHS를 보는 것 같다. 눈 앞에 환풍기처럼 장면들이 깜빡이고 검은 실선처럼 화면이 흔들린다. 하지만 내용은 진실되고 난 그 이야기에 휩쓸린다.

읽 고 나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지만 무언가 느꼈다는 감정이 남으면서 독자를 묘하게 만든다. 어쩌면 화자는 나일 수도 있고, 나와 아무런 관계까 없을 수도 있다. 나는 화자를 관찰하고 있지만 나 자신을 되돌아 본 느낌마저 받는다. 콘트라베이스라는 일반인에게 가장 멀게 느껴지는 악기를 대상으로 그는 예술을 말하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그가 고통받고 고뇌하고 슬퍼하는가를 고민할 뿐이다. 적당히 성공했고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만족하지만 비어있다. 그리고 이건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돌아볼 수 있는 상처다.

분량은 짧고, 책은 얇지만 그 안에는 내가 있다. 책은 마치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나는 읽고나서 아무것도 인정하기 싫어서 책에서 느낀 바가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렇게 감상을 쓰지만 난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삶도 그와 같이 단조로울 뿐이다. 그는 용기를 가지고 외치기 위해 나갔고 나 혼자 모든 소리가 95%까지 차단되는 방 안에 남겨졌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이 방 안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그리고 내가 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때, 난 무엇을 해야 할까.

난 아직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가 나가버린 문을 바라본다. 난 아직 저 문을 열 용기가 없다. 그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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