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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보법, 감상.

by UVRT 2009. 11. 8.



보법 1

저자
최민혁 지음
출판사
북박스 | 2002-09-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최민혁 장편 판타지 소설. 대륙을 지배하는 검과 마법의 왕국에 ...
가격비교

일단 Yes24에 있는 책소개를 인용하자면 이 책은.

<진정한 사나이들의 모험이야기>
<한켠에 슬픈 과거를 안고 현재의 거친 격랑을 헤쳐 나가>

는 이야기가 되겠다. 헛소리하지 마라. 등록불가 판정이 뜨면 안되니까 최대한 자제하겠지만, 적어도 저건 헛소리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 거짓말을 해도 정도 껏하라고. 일단 ... 무지하게 많은 내용이 잘려먹힌 스토리 구성에 캐릭터는 괴이하고 개연성은 부족하다. 미묘하게 분량이 정해져있고, 그 안에 모든 이야기를 우겨넣으려다보니 내용이 정말 괴상하게 되어버렸다고 할까, 이건 아니다 싶은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누가 이 책을 재밌다고 말해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은 재미 없다. 벽력천신이나 신승처럼 완벽한 폐기용품은 아니라도 적어도 집에 사놓고 후회를 하지 않은 정도도 아니다. 사놓으면 후회한다.

이런 점에서 대여점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지뢰탐지기 같은 용도랄까, 만약 서점에서 랩핑이 되어 있어서 내용 확인도 못하고 사왔다면 난 절망했을 것이다. 결국 이런 질의 책들이 계속해서 보급될 수록 대여점은 필요하고, 더 이상 내용확인을 위한 예본을 서점에서 일절 배치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판타지는 점점 죽어가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다시금 한국 판타지가 걱정된다.

표지도 출판사들은 생각 좀 했으면 좋겠다. 책을 읽어보면 표지랑 전혀 분위기가 맞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저건 보법이 아니라, 권법표지다. 주인공이 약해보이냐? 근육만 보면 사람 두셋은 찜쪄먹겠구만. 일러스터들도 밥 먹고 살아야한다는 건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표지는 책의 얼굴이다. 책 한줄 읽어보지 않는 듯한 표지를 그려대는 일러스터들도 이해가 되지 않고, 저딴 표지를 요구하고 수락하는 출판사들의 정신 세계도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책을 만들지 않는다. 책을 '생산'할 뿐이다.

두번째로 Yes24의 저자 소개도 훑어보자.

<언라이팅(on-writing)이라는 닉네임으로 더욱 잘 알려진 작가>

내가 생각하기로는 저건 온라이팅이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어느 지역의 본토 발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라이팅으로 하면 un-writing, 안 쓴다는 거냐.

"안녕하세요, 오늘의 조리장, 김 요리안해 입니다."

오타로 생각하자. 설마 진지하게 저걸 적었을까. 사실 이건 그냥 웃자고 하는 농담이고, 적당히 고객센터에 문의 넣어서 수정요구할 생각이니까 너무 심각하게 반응하지 말고 적당히 웃어주시면 좋겠다.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차용해보자.

<『보법』을 통해 걷는다는 것, 혹은 걷는 방법에 대한 소설적 사유를 끌어낸다.>

꺼져. 입다물어. 그만해. 이건 아니잖아? 나 여기서 소설 초반부분을 제외하면 주인공이 보법에 비중을 두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요즘 걷는 방법에 대한 소설적 사유는 칼질로 사람 써는 건가. 거기서 무슨 사유를 느껴야 되지? 그 전에 이 책은 보법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는 하고 있는 건가? 적어도 권왕이나 권황지로 같은 걸 보면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주먹질을 해서 '아, 권이 짱이구나.'라고 생각이 들게 해주는데 이 소설은 대체 어떤 부분에서 '아, 보법이 짱이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지 모르겠다. 애시당초 제목은 보법이지만 별로 보법이 중요한 부분도 아니고, 나중가면 그냥 제목이 보법인 책이다.

요약하면 소재와 주제가 중반만 가도 어디론가 사라진다. 즉, 걷는 방법에 대한 소설적 조명조차 없는데 퍽이나 사유하겠다.

글쓴이는 분명히 이야기 재주가 있다. 그런데 5권이라는 내용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사건이 전개되고, 분명히 호홉을 늘려줘야 하는 부분에서조차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를 보여준다. 독자와 공감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하며 중반도 되지 않았는데 주제와 소재를 잃어버리는 우까지 범한다는 점에서 이 내용은 출판이 될만한 수준에서는 한참 미달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북박스는 책을 '만들어라' 제발. '찍어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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