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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모래선혈, 감상.

by UVRT 2009. 11. 8.



모래선혈

저자
하지은 지음
출판사
로크미디어 | 2009-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하지은 장편소설『모래선혈』. 전작 얼음나무 숲에서 가슴 시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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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이 3글자로 끝을 맺을 수도 있는 책이지만, 결국 잔혹한 정치물의 가능성을 버리고 연애소설이 되어버렸다. 흥미로운 소재다. 소설가와 소설을 소재로 하는 글은 작가의 역량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분에 쉽사리 선택할 수 없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써냈다. 처음 보는 작가지만 이 전작인 얼음나무숲에 대한 호평을 많이 들은지라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소설은 그 기대를 만족시켰다.

매 우 즐겁게 읽었다. 읽는 도중에 개가 계속 위에 있어서 무지하게 더웠지만, 그런 것 정도는 극복할 정도로 재밌다. 꽤 많은 분량이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 책은 길을 잃지 않고 말해야 할 것만을 말하는 절제를 보여준다.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열사의 사막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있어 사랑을 해보겠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평생을 살면서 어떠한 감정도, 색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처음으로 아릿하게 저린 마음을 품게 하는 글은 대체 어떤 작가가 써야 할까. 정말로 슬픈 사람이 써야 할까.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 써야 할까.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써야 할까. 감정이 없는 자에게 감정을 주는 글. 볼 수 없는 자에게 풍경을 상상하게 만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오만이라 쓰면 사람은 한 없이 타락할 것이고, 그가 타락이라 쓰면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결국 오만은 스스로 타락하여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위대한 선지자는 죽는다. 그리고 다시 어떤 위대한 누군가를 우리는 끊없이 기다린다.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이 시대에 이렇게 따스한 감정을 느끼게 해줄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이 시대의 모든 작가들은 지금도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글을 써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감각한 세계를 살아간다. 모노톤의 이 세계에 누가 마지막 색을 칠할 것이며, 노랗기만 한 이 사막에 누가 피를 흘려 붉은 꽃을 피울까. 그 꽃은 작지만 붉고, 붉기에 희망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한 송이 꽃이 될 수 있는 글, 그런 글을 작가는 열망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이 책은 읽을 때는 빨리 읽고싶은 마음 뿐이지만 다 읽을 때 즈음이면 난 다른 감정이 생긴다.

"빨리, 글을 쓰고 싶다. 정말로 위대한. 정말로 좋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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