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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단평

그러니까 이 판타지/무협은 말이지 (6)

by UVRT 2013. 1. 9.

1. 천하제일 이인자 전 12권

역시 무협지는 12권으로 끝나야 재미가 보장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재밌어. 최적의 가슴 크기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은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그래, 내공으로 조절할 수 있으면 그게 정답이다. 아아. 고매한 신공절학의 묘리여. 만류귀종일지니! 여러가지 잡다한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내용이 꾸준히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말솜씨가 대단하다는 뜻일테고, 이렇게 권수가 많음에도 끝까지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중심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고 복잡하지만 명쾌하다는 뜻이다.

책을 본 뒤에 작가의 이름까지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을 정도다.

 

2. 낙향무사 전 10권

오오. 역시 무협지는 권수가 많아야 명작이 나온다는 진리가 정답이구나. 쩔어. 낙향고수물 중에서는 이게 최강이다. 거 뭐지,  아. 그래. 도제. 그거랑 비슷한데 그거보다 완성도가 더욱 높다. 도제가 그냥 커피라면 이건 맥심 커피야. TOP? 그건 맛없잖아? 개나 줘. 마지막까지 전부 패죽인다는게 맘에 들고, 무공의 한계점에 따른 캐릭터 배치가 매우 훌륭하다. 묘사보다는 구성력의 승리. 캐릭터 배치와 밸런스 제어에 중점을 두고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본다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3. 하급표사 용병왕 되다 전 6권

대마왕을 막기 위해 이세계로 날아왔지만 그걸 알아채는 것은 5권! 대마왕이 강림하는 것은 6권! 그리고 강림부터 제거까지 가는 시간은 10장! 거기에 대마왕이 파워업을 하고 완전 제거되면서 전형적인 악당의 패배 대사를 읊조리는 곳까지 가는 게 5장! 중간까지는 나름대로 괜찮은 이세계 용병물이었지만 대마왕이 개입되면서 이상해졌다! 차라리 사막을 정벌하지 그랬니!

 

4. 광룡기 전 10권

소소한 재미가 쏠쏠하고 내용은 잘 흘러가지만 분량을 버틸 정도의 내용은 아니었다. 고루거각이 화려했으나 나무 기둥은 온데 간데 없고 콘크리트로 사방을 둘러쳐버리니 이게 무슨 재미겠는가. 허나 제목의 記자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이 맞는 것도 같으나, 2008년이라는 시간을 감안하면 사건을 3개나 만들어 놓은 것이 잘못이었다. 거기에 커다란 헛점 또한 존재하니 읽을 때는 재밌으나 뒷장이 궁금치는 않다.

 

5. 검마 전 10권

8권까지는 작가가 역량에 맞지 않게 무리한다고 생각했다. 큰 이야기 흐름이 2개인데, 이것을 따로 나눠서 각각 책을 냈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9권이 되었을 때 난 이 사람이 대체 어떻게 이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고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가 고민하기 시작했고 10권 200페이지가 넘어서면서 이새끼가 장난치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내가 한 생각은 시발놈이 이따위로 할 거면 그냥 적당히 6권 쯤에서 끊어먹을 것이지 10권이나 늘여 처놓고는 개수작질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게 되었다.  

 

6. 클리어 전 6권

결국 클리어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노란 마나는 뭔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끝났다. 그래놓고 8써클 찍으면 몽땅 무쌍이니 이게 무슨 난리인가. 거기에 쓸데없이 마누라만 100명 넘어감. 왜곡된 성지식 쩌네. 여섯권에 끝내려면 1권과 2권 전반부를 압축해서 1권 전반부로 줄여놓고 템포를 빠르게 잡았어야 했을텐데 이 사람 한 8~10권 생각하고 쓴 듯 하다. 조기종결의 기운은 모르겠으나 뒷권 쓰면서 자기가 앞에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 못하는 듯한 사건 풀이는 그야말로 망조다.  

 

7. 제로메이지 전 6권

의외로 5권과 6권이 제일 명작이었다. 사두용미까지는 좀 아니고 앞뒤 어불성설이 되는 상황이 나오긴 한데 뭐 그런건 넘기고 마지막이 흔해빠진 로맨스 소설의 에필로그를 따라간다는 점이 좀 병신같달까. 캐릭터 전환이 너무 급격해서 크게 이입이 안되는 것도 문제고, 플롯의 사건 분량 배분이 조금 어긋난 기분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후속작이 있다고 한다면, 한 번 보고 싶어진다. 적어도 글이 권이 넘어갈 수록 발전은 하지 않는가.  

 

8. 블러드 드래곤 전 9권

아무 생각 없이 다 패잡고 지 위험할 때만 인권에 사람 찾는 소설 좋아하시면 이 책 좋습니다. 엔딩이 깔끔하거나 멋져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책은 천하의 개쌍놈이 될 수 있겠죠. 이렇게 노골적으로 2부 우려먹기를 하고싶어하는 기색이라니. 뭐 고민이고 나발이고 없고 그냥 다 때려잡으면 오케이입니다. 주인공의 고뇌고 나발이고 그딴 것도 없는데 웃긴게 마지막 결투 때는 뭐 주변 사람이 어쩌고 저째? 이 개새끼가 지가 딴 놈들 패죽일 때는 그딴거 신경도 안써놓고는 지가 할 때는 강자는 고독하지 않다고 하는 무슨 개수작이야. 니가 죽인 건 부모도 자식도 친구도 부하도 동료도 없는 미친 놈들 뿐이냐. 뭐, 저런 이중잣대 별 신경 안쓰시면 나름 시간 때우기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9. 콜로서스 전 7권

7권까지 가는 동안 별로 어려움이 없었는데, 그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난감했다. 글이 크게 재미가 넘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선한 발상이나 캐릭터가 재미난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읽는데 아무런 걸림이 없는가. 6권 말엽이 되서야 알게 된 사실은 가독의 용이함은 과감한 생략에서 왔다는 것이다. 쓸모없는 사건, 인물, 내용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시간이건 공간이건 빠른 박자를 지니고 생략하고 지나간다. 사실 판타지 장르 소설들이 장편화되는 이유는 작가가 이 생략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그런 점을 해결한 것이 이 책의 강점으로 보인다. 내용 자체는 묵향이래로 내려온 평범한 마법로봇물이다.

 

10. 천하제일협객 전 7권

어쩌면 우리나라 추리활극의 맥은 무협에서 잇고 있는게 아닐까. 단서를 밝히면서 사천이라는 지방에 한정된 동선은 깔끔하게 도시 활극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고, 마지막에 가서 힘이 부치는 것이 보이지만, 그리 흠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숫자를 1~2개만 줄였다면 좀 더 충실한 내용을 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점이 아쉽다.

대중소설은, 이야기의 흐름이 가진 힘이 부쳐서는 결코 안된다.

 

11. 환희밀공 전 5권

이제 설봉은 자신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팔아먹을 수 있는 작가라는 확신이 섰다. 초심자라기 보다는 매니악한 독자층을 자극하는 소설을 쓰는 설봉의 글은 무협을 충분히 이해하고, 오래 동안 향유한 사람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재미를 가져다준다. 식상한 소재를 식상하지 않게 풀어내는 능력은 상투적 소재를 잘 알고 있어야만 그 효과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무협을 본지 5년이 넘었다면, 설봉의 글도 재밌을 것이다. 물론 그 이하라도 재밌겠지만 무협을 알아갈수록 설봉의 글은 더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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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1 ~ 2013/01/09  전 88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