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라. 가장 좋은 상태는 그것의 존재마저 잊혀진 상태다. 완벽은 부재에서 나오지만 그것이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산다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죽는다는 것이 반드시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고통이 있기에 행복할 수 있나니.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 것은 지극한 행복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행복에서도 버림받은 것이다.
얼음을 지치며 삶은 다가오고 있다. 잘못된 것을 돌이켜 삶이 변하는 것은 좋은 일인가. 삶의 마지막에 삶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전제가 그릇되었음을 인정하는 일인가. 아니면 생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놀라운 자기 성찰인가.
옛 약속을 잊지 못하는 것은 추억때문이
아니라 미련이라 미안함이 남아서다. 좋던 것은 이제 다 잊혀지고, 루리는 삶의 뒤켠에 남겨진 옛 기억을 미화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 여름 휴가 속의 가족같은 것이다. 그때 그 시절은 좋았었던 같다. 정말로 좋았었던 것 같기만 하다. 그 시절 당시에는
개같았을지 모르지만, 아니 개같았지만 그런 것은 잊는다. 잊으며 살아간다.
사람은 잊어야 살아갈 수 있다. 인생을
재단해 생존에 맞춰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엔 잊어버린 추억이 내게 전화를 건다. 추억의 전화벨은 나를 재촉하고 수화기를
들지 못하는 아쉬움이 절실하다. 전화 너머 목소리를 상상할 때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지금 너와 내가 대화를 나누게 될 때 나는
현실로 끌려나온다. 추억이 현실이 되면 과거도 현재가 된다. 미화된 감동은 이제 고통이 되어 삶을 찔러 들어온다. 세상이
오그라들어 나를 조인다. 이 압력이 바로 피하고 싶던 그 현실이다.
세월이 살갗에 켜켜이 쌓여 내 삶이 무뎌진
줄 알았다. 그래서 이제 아프지 않다고 믿었다. 날카롭게 예민하던 시절을 젊음이라 부르며 둔한 나를 한탄한 적이 있었다. 세월은
쌓이고 쌓여 날 가루내버렸다. 예민하던 옛 시절에는 쌓여가는 세월의 실오라기를 느꼈다. 그래서 항상 괴로웠다. 지금 나는 바람에
날리고 있다. 세월에 온 몸이 짖눌리고 닳아 아플 몸이 없다. 그래서 과거는 추억이 되었다. 과거는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못한다. 내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과거가 괜찮다.
그리고 전화가 걸려온다. 저 먼 옛날에서.
그리고 세상이 오그라든다. 먼지처럼
부유하던 나를 주형(鑄型)에 밀어 넣는다. 티끝같은 나를 부어 지금 여기에 나를 던진다.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
고통이 밀려온다. 너무 긴 세월동안 잊고 살던 실수와 잘못들이 이제 내게 다가와 반갑게 얼싸안으려 한다. 감정이 고개를 쳐든다.
욕망이 불끈거리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허리를 접어가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서 이제 내겐 슬픔이 있고 추억은 없다.
삶이 오늘로 끝이라 생각하기에 내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내일이 없으니 오늘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과거에 얽메이지 않았다. 시간이 무가치해서 사람 또한 하찮았다.
그리고 나는 끝을 보았다. 그래서 내일이 생기고 오늘이 떠오르며 과거가 나를 쥐어짠다.
이제 나는 고통 속에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내일을 기다려야 하기에 이 고통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어제의 고통을 잊어 아름답게 만들자. 그리고 다가오지
않을 내일을 생각하자. 구두가 만들어질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흐른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중요치 아니하다. 다만 나는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릴 마음을 먹었다. 다시 이 고통의 벌판에 있기를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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