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즐거운 이야기가 아닌가. 인생은 돈이 지배하는 건지 욕망이 지배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호기심도 돈도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다. 물론 사람이 모든 것이 아니지만 결국 사람이 가장 필요하다. 쓸데없는 호기심은 곧 욕심이고
그건 자신의 목을 졸라매는 덫이 될지니. 가진 부유함에 만족하고 욕심은 부리지 말지어다.
자, 두번째 핀란드
소설이고, 개인적으로 레나 크룬보다 내가 상상한 핀란드같은 핀란드 소설이다. 이 속에 녹아있는 것은 내가 비꼬고 믿지 않던 복지
국가의 핀란드가 펼쳐져 있다. 핀란드의 군대, 핀란드의 범죄, 핀란드 복지의 현실을 매우 간결하고 직접적으로 꼬아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현실을 한 곳에 던져 넣는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신의 아들이지만 사람의 자식인 분을 통해 하나가 된다. 물론 종교인이
아닌 사람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다른 나라의 문학을 읽을 거라면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그 사람들의 문화 기저에 깔린 세상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유교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유럽의 문학도 성경에서 완벽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소설은
사람의 이야기이고, 사람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년 이상을 성경을 읽으며 자라왔고, 그들의 사회는 천년 이상 성경을
읽어왔다. 그런데 성경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옳을까? 오히려 그것은 또 다른 방향의 왜곡이 된다.
진실되게,
하지만 사심 없이 사회를 보여주는 것, 그게 작가의 역량이고 이 소설은 굉장히 독특한 장소에서 여우들을 주렁주렁 나무에 매단 체로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돈은 점점 줄어들어가지만 그들은 사람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것이 바로 핀란드의 모습이다.
지금 여기 보이는 속물적이고 괴상한 세상 속에 핀란드의 모든 것이 녹아있다. 핀란드의 자연이, 핀란드의 사람이, 핀란드의 사회가,
핀란드의 세계가 존재한다. 이 작은 집 속에 우리는 아낌없이 핀란드를 넣고 있다. 캘리포니아 같은 귀찮은 동네에서 살아간다면
한시도 핀란드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빌어처먹을. 사우나를 하고 얼음 속에 뛰어들고 싶다고.
누구도
자신이 사는 곳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는 없다. 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렇지 않다. 향수병은 없지만 내가 사는
곳이 그리워진다. 그 열기가, 그 태양이, 그 맑은 밤이 그리워진다. 너와 나 사이에 가득 차오르는 도시의 존재감이 너무나
그립다. 여긴 사람은 많지만 그 사람과 나 사이가 비어있다. 너와 나를 이어주는 건 대체 뭘까.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던 그 곳이 그립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너의 살갗이 느껴지는 그 곳이 너무나도 아련하다.
이 곳은
그런 핀란드를 느끼게 해준다. 핀란드를 그리워하게 해주고, 그 이유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매우 독특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나는 핀란드가 좋다. 여우는 다 커서 떠난다. 하지만 그 여우는 결코 소시지를 잡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독일인들은
소시지를 잡고 목이 매달려 대롱데롱 걸린다.
하지만 핀란드 사람은 걸리지 않는다. 그게 바로, 핀란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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