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 이건 앞에 쓴 <펭귄의 우울>의 속편이고, 사실 저 본편의 영제는 <죽음과 펭귄>이고, 원제는 <죽음과 기묘함> 혹은 <죽음과 모르는-낯선- 사람>정도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Пикник이 피크닉, 뚱뚱하고 작은 사람 이라는 뜻인데 на льду가 얼음 위의 같은 뜻이라서 대충 의역하면 '얼음 위의 소풍' 정도가 되겠다. 나름 멋진데, 영미권에서 제목을 <Penguin Lost>로 해놔서 이쪽도 이제 제목이 <펭귄의 실종>이 되버린 것 같다. 음, 굳이 그랬어야 하나. 사실 나는 원제에서 의도하는 바가 있을거라 생각하는 제목 중시자라서 항상 원제를 찾아보지만, 이번에는 좀 아쉬운 번역이었다.
어찌되건, 다시 또 금방 펭귄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제가 앞 글에서 내가 펭귄이라고 했었지 싶네요. 앞글을 안 보셨나요? 보고 오셨으면 좋겠네요. 뭐 안 보시겠다면 어쩔 수 없구요. 어찌되건 일단 사과를 드려야 겠어요. 전 말이죠, 펭귄이 아니었거든요. 하아, 죄송해서 할 말이 없네요. 그러니 다시 한 번 더 사과드릴게요.
"전 펭귄이 아니었습니다."
펭귄에게 큰 빚을 져 버렸네요. 펭귄이 아닌데 펭귄이라 해버렸어요. 그런데 그럼 펭귄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제가 펭귄인 척 해버렸는데. 제가 지금 여기에 있는데. 분명히 여기에 저는 있는데 펭귄은 어디로 간 걸까요? 전 어떻게 해야 펭귄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요. 아, 도통 모르겠네요. 머리가 다시 아파와요. 뭐 전 잘 모르겠으니 펭귄 이야기는 그냥 접어버릴게요. 펭귄 따위 알게 뭔가요. 그냥 제 얘기나 하는게 좋을거 같아요. 어차피 펭귄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펭귄이 아니었다면 전 어디에 있는 걸까요. 전 펭귄인 척 하고 있었는데 펭귄은 저인 척 안해줬잖아요. 그래서 전 사라졌어요. 저인 척 해주는 펭귄이 없었거든요. 그나마 펭귄이기라도 했는데 이젠 펭귄도 아니라서 전 어디론가 가버렸어요. 전 여전히 여기 있는데, 여기 없어요. 저도 펭귄도 없어요.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네요. 실종되어 버렸어요. 아니, 잃어버렸어요.
펭귄은 이제부터라도 제가 찾으면 되지만 전, 어쩌죠? 그 전에 펭귄은 찾을 수 있을까요. 뭐, 그러면 다시 펭귄인 척이라도 해야겠죠. 순간이 반짝여요. 펭귄이 헤엄치네요. 가슴에 상처를 가진 어린 아이의 심장이 팔딱거리는 펭귄이 바싹 마른 몸통으로 개 우리에서 절 바라봐요. 절 바라봐요. 저 눈. 저 눈. 저 눈과 고개의 갸웃거림이 절 미치게 만들어요. 펭귄이 저기에 있구나. 정말로 저기에 있구나. 나는 불구덩이에서 타 죽은 것 같은데, 병에 맞아 죽은 거 같은데, 총에 맞아 죽은 거 같은데 물에 빠져 죽은 거 같은데 주먹에 맞아 죽은 것 같은데! 펭귄은 여전히 저기에 있어요.
고개를 갸웃거려요. 펭귄이.
얼음 구덩이 속으로 펭귄이 미끄러져들어가고 그 곁에는 얼어죽은 어부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어요. 아마 아침녘이 되면 누군가 발견하겠죠. 그러니 전 그냥 집에 갈래요. 세상이 돌고 돌고 또 돌고 있어요. 달팽이는 집을 벗어나면 안되요. 그러니 나는 달팽이가 되어서도 안되요. 펭귄이 되어야 할텐데. 남극으로 펭귄을 데려다줘야 되요. 대체 왜 그러야 하는 걸까요. 나는 왜 펭귄을, 남극으로 데려다줘야 할까요. 그 펭귄을 위해 나는 이제 뭘 해야 하는 걸까요. 남극으로. 제발, 펭귄을 남극으로 데려다줄 수 있게 해줘요. 그 갸웃거림이 무리를 이룰 수 있게 해줘요.
아르헨티나로 떠나는 배를 띄워요. 헷살은 좋고 남극에 딸린 섬을 지나가요. 그곳에는 펭귄이 살고 있겠죠. 네 남극은 아니지만, 남극만큼 괜찮은 곳 같아요. 가슴에 상처를 품은 2겹의 지방층이 있는 검고 하얀 친구는 이제 떠나가요. 차가운 물 속에 몸을 뉘일 거에요. 나는 이제 아르헨티나로 떠나가요. 나를 사랑하는지 안하는지 모를 여인가 그 장인과 불구덩이에서 타 죽은 사람이 모아둔 금괴를 가지고 이제 그 사람이 가족과 하고 싶었던 빵집을 차릴 거에요. 이야, 펭귄을 잃어버렸어요.
영영 펭귄은 사라져 있을 거에요.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항구에는 제가 손을 흔들며 저를 기다리겠죠. 펭귄에게 키스를 날려줘요. 그리고 저를 위해 손을 흔들어 줘요.
소냐, 소냐.
나는 이제 행복해질 것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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