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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김 박사는 누구인가?, 감상.

by UVRT 2013. 11. 2.



김 박사는 누구인가

저자
이기호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3-04-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우리 시대 젊은 재담꾼 이기호의 세번째 소설집. 신작 『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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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정체는 무엇인가? 내 말을 듣는 당신은 정말 내가 생각하는 당신인가, 내가 왜곡한 당신인가. 인간은 타인의 인식 속에서 스스롤르 확립한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 만다. 아마 맞겠지. 잘은 모르겠다. 어찌되건 그렇다면 나는 내가 믿는 '나'가 아니라 남이 믿는 '나'가 더 진실된 '나'가 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나를 인식해줄 타인이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도 없으니까. 인간이 인간끼리 떨어지는 것이 현대라면, 인간 스스로 홀로 파편이 되는 것이 미래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사회의 파편이 아닌 나의 파편이 된다. 나는 나의 '나'와 남의 '나'로 분화되고 있다. 어, 이영도? 어쩌면 분열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영도네. 내 정신은 플라나리아처럼 늘어나고, 나는 점점 나와 마주보며 서로를 비춘다. 내가 무한히 늘어나고 그 사이에 악마가 뛰어서 나에서 나로 넘어간다. 그래서 난 산산히 부서지를 걸 택했다. 아니, 부서졌다.

이기호는 문학의 쿼크를 발견한 것 같다. 세상을 이루는 것이 개인이라는 원자라면, 이 책은 개인을 이루는 음전자와 양전자, 중성자를 말한다. 어쩌면 프로이트가 나눈 Super-Ego, Ego, Id가 바로 이것일지 모른다. 이기호는 up-down하는 쿼크를 찾아 떠났다. 이 책을 유서처럼 남기고. 뭐, 물론 이기호는 아직 한국에서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냥 떠났다고 말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남아서 나를 나눈다. 내가 누구인지 나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라 권하는 이 이야기들은 내개 게슈탈트의 일을 강요한다. 어디 한 번 내가 뒤져봐야 이 책이 기뻐할 것이다. 아직 난 뒤지지 않았고 책이 기뻐할 날은 요원하다. 내가 뒤지지 않은 이유는 판단을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무지에서 비롯되었고 나는 아직도 어떤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내가 나를 잊을 때 나는 나를 초월하는 것인지,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인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뒤지지 않고 지금 잇다.

사람이 분자였을 때는 돌아갈 샘이 있었고 디딜 땅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원자로서 만나 사회라는 분자로 살고 있었다. 우리를 이어주는 힘은 제 5의 힘, 신성력이었다.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샬롬, 인샬라. 머리 뉘일 북쪽이 존재하려면 북극성이 있어야 하고 저 빌어먹을 별이 떠 있다고 합의하려면 우린 서로와 붙어 있어야 했다. 합의는 너와 내가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 때는 인간이 어디론가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개인이라는 원자로 인식되는 지금에 와서 우리는 돌아갈 곳을 잃어버렸다. 떠날 수가 없으니 돌아갈 곳도 없었다. 그래서 떠날 수도 남을 수도 없는 '나'라는 괴로움을 그저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그 때까진 마주볼 내라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내 우리는 나조차 잃어버렸다. 괴로움도 같이 잃어버려서 없어졌지만, 괴로울 수 없다는 사실의 괴로움이 꼬리를 물고 몸을 뒤틀었다. 세계수는 사라지고 니드호그의 독니만이 뭉글뭉글 저주를 뿜고 있다. 외면하던 두려움이 이제 내 깊은 곳에서 아무런 간격 없이 나를 직시한다. 그것의 이름은 진실이자 괴로움이었다. 나는 괴로움만 진실로 남은 세상에서 괴로움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에는 괴로움 뿐이다.
즐거움은 없고 오로지 세상에는 다종다양한 괴로움만 있다. 조금 덜 괴로운 괴로움과 조금 더 괴로운 괴로움 사이에서 나는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착각하며 세뇌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세상에는 괴로움 뿐이다. 그런게 진실이다. 그래서 진실은 괴롭다. 즐거움과 기쁨 같은 것은 괴로움이 모여 만들어낸 전자이자 중성자에 불과하다. 좋은 괴로움과 나쁜 괴로움을 바탕으로 우리는 괴롭게 즐겁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다. 그래서 나의 답이자 김박의 정체는 바로 그런 것이다.

이기호는 정말 나쁜 놈이고, 나쁜 소설을 쓰고, 나쁜 말을 하지만 어차피 세상은 나쁨 뿐이고, 그래서 괴롭다. 그러니 나의 답은 너가 될 수 있다. 나나, 너나 나쁘니까. 너나, 나나 괴로우니까.

그래서 너란 놈의 답도 나다.

나나, 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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