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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

끄르일로프 우화집, 감상.

by UVRT 2013. 6. 2.



끄르일로프 우화집

저자
이길주 지음
출판사
배재대학교출판부 | 2007-12-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선구자이며 민중언어의 구사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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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라퐁텐이나 이솝의 우화를 많이 따온 부분이 대부분입니다. 끄르일로프 본인의 창작 우화도 많지만, 사실 읽다보면 반 정도는 이미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좋네요. 어떤 부분이 러시아에 맞춰 바뀐지 알기 때문에 오히려 그 지점에서 발생하는 러시아의 편린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화가 비웃고 있는 러시아의 현실, 그리고 우화가 풍자하는 러시아의 진실된 모습이 반짝하고 빛나고는 곧 사라집니다.


우화는 analogy의 세계입니다. 유비라고도 일컬어지는 단어인데요. 우화에 나오는 모든 것은 그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무언가입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명확한 정체를 드러내고 있죠. 이솝의 이야기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를 정말 개미와 베짱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는 말이 안되니까요. 이 곳에 나오는 모든 이름 있는 것들의 껍질 속에 존재하는 러시아를 찾아봐야 합니다.


18세기 말엽부터 19세기 초기에 활동한 이 천재적인 작가는 우화라는 너무나 환상적인 곳에서 가장 신랄한 리얼리즘을 추구합니다. 당신의 현실이 지금 여기 이자리에 적확하게 까발려져있죠. 아프네요. 그리고 이제 그때의 러시아가 떠올라 지금의 저와 겹쳐갑니다. 리얼리즘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저도 사람이고, 아마 저 때 러시아에 있던 분들도 사람이었을 겁니다.


지금 저는 양과 늑대에서 제가 보입니다. 2세기를 넘어서 21세기에 있는 우리는 이 책에서 과거의 향수를 느낄까요?


아뇨, 현실의 예리함을 다시금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살갗을 스치는 날카로운 칼날의 감촉과 싸릿하게 맺히는 핏방울의 온도는 저에게 지금 이것이야 말로 현실이라고 속삭입니다. 단 한 번도 끄르일로프의 목소리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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