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마 이런 구성을 하는 재주는 없을 것 같다. ...까지만 적어두고 이거 있는지도 까먹고 있었다. 겨우 발견해서 쓰긴 쓰는데
자세한 내용을 서점 사이트 책소개를 보고야 기억이 난다는 점에서 나란 새끼도 참 답이 없다. 사실 온다 리쿠는 트릭을 깊게 짜지
않을 뿐이지 대부분 추리 소설의 구성을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범인이 누군지 없거나, 혹은 범인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세계. 결과가 먼저 제시되고 과정을 더듬어서 원인을 추정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밝혀지는 순간 결과가 뒤집히고 모든 과정이 재조립 된다. 끝에서 다시 더듬어 올라가는 구성은 내게 있어서 굉장한 지적 마조히즘을
일으키면서 온다 리쿠라는 사람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우리는 항상 결과의 세계를 살아간다. 사실 인생은 과정의
연속이라지만, 눈치챌 수 있는건 오로지 결과 뿐이다. 수없이 작은 결과가 무수히 반복되면서 우리는 그걸 과정이라 생각하고, 오지
않을 결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그래,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결과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과정이라 생각하는 결과만 있을 뿐.
세상이 인과율에 얽혀 있다는 순진한 소리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결국 세상은 모두 인과율에 얽혀있긴 하다. 내가 그 인과를 모두 알
수 있다면, 라플라스의 악마도 당연히 될 수 있겠지.
온다 리쿠는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모든 것을 관찰하고
예측하여 상상할 수 있는 가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결과가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무수한 왜를 던진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된 걸까, 왜 하필, 왜. 세상은 왜를 싫어한다. 사실 나도 누가 나에게 집요하게 왜를 묻는다면 싫다. 하지만, 내가 왜라고
생각한 것에 누구라도 대답을 해줬으면 하기에 나도 누군가의 왜에 대답하려 노력한다. 순수하게 왜를 던질 수 있는 세상도 사람도
상황도 없다. 그래서 나는 온다 리쿠를 사랑한다.
이야기는 나를 대신해서 왜를 던진다. 내가 모든 원인과 결과를
관찰하게 한다. 나는 내 안의 욕망을 이야기로 충족하고 만족한다. 의문을 가질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나는 이야기를 통해 의문을
해소한다. 질문은 없다. 나는 항상 모든 결과에 승복할 뿐, 원인을 탐구하지도 결과에 의문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나의 논리는
막혀있고, 나의 세계는 항상 닫혀있다. 그래서 나는 온다 리쿠의 음모론적 세계를 사랑한다.
의심하고, 의문을 던지고 결과에서 원인을 추론하고. 나는 과정을 음미한다. 세상 모두가 음모라니, 얼마나 황홀한가. 나는 벗어날 수가 없고, 벗어나고 싶지도 않다.
온다 리쿠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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