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230페이지에 불과하지만 이 책은 종교인이라면, 아니 인문학의 견지에서 인간의 삶을 돌이켜볼 때 매우 필요한 부분들로 이뤄진다. 사람은 수많은 유혹 속에 있다. 그 유혹이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간에 우리는 유혹 속에서 살아간다. 삶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증오한다. 인간이니까.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런 능력으로 살아가느니 그냥 죽는게 더 세상에 보탬이 될 것 같다고 느낀 사람도 있었고 이 사람이 죽으면 내 삶의 행복지수가 한 120정도 오르겠지, 라고 확신한 사람도 있었다. 온갖 병신의 종류를 만나보고 나도 그런 온갖 종류의 병신이 되어봤다. 남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쉽고 내가 잘못한게 없다고 말하는 것은 본능이다. 리스크를 감수하기에 내 양심이 너무 얇다. 사실 돈을 위해서라면 친구 정도는 팔아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액수가 문제지만.
그 시기를 살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나도 사람이고, 쟤도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친구를 피할 수도 없고 개선할 수도 없다. 어차피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정도의 열정과 시간과 사명감이 없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러니 생각할 건 하나 뿐이다. 어찌되건 우리 모두 사람이라는 것.
내게 인생은 너무 쉽다. 남들이 고민하던 시점에서 고민해본 적이 없고, 좌절할 시점에서 좌절해본 적이 없다. 못해서 억울했던 적이 없고 해서 손해본 적도 크게 없다. 누군가는 그게 좌절이다, 그게 손해다 라고 내 삶을 정정해줄지 모른다. 하지마 나는 그게 좌절이고 손해라 생각한 적이 없으니 나는 좌절도 손해도 본 적이 없다. 삶이 너무나 긍정적이라 굉장히 씁쓸하다.
돈이 필요하면 돈이 생겼고,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으면 할 기회가 왔다. 시간이 필요하면 시간이 남았고 놀고 싶으면 놀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나를 속이고 삶을 기만하고 사랑을 불신했으며 행복을 냉소했다. 자, 나는 얼마나 그릇된 사람인가. 남을 배려하기 위해 남을 더 고통스럽게 한 적이 있는가. 내가 남을 배려하는 것은 '겸손하다'라는 칭찬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진정 남을 생각해서인가. 아니 그 전에 우리는 왜 진실된 우리의 생각을 교환하려 하지 않고 남에게 맞춰줬다라는 자기기만을 추구하는가.
왜 결혼을 사랑해서 해야 하는가. 결혼을 통해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렇다면 옳지 않단 말인가?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시작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인가. 애시당초 사랑 때문에 결혼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고민하던 문제들에 좀 더 쉬운 조언이 다가온다. 나는 불교도이고, 한국 땅에서 벗어나서 종교활동을 해본 적이 없지만 이 그럴듯한 악마의 조언이 담긴 편지는 굉장히 유용하다. 무엇이 의미있고, 가치로우며 행할 만 한가.
나는 사람이고, 너도 사람이다. 그리고 시간은 유한해서 사랑해주기에도 모자란다. 무슨 이유로 우린 미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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