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아직도 백가흠의 대표작은 '광어'다. 그의 글은 언제나 내게 농(濃)하게 다가온다. 굉장히 잘 쓴, 이라는 수식어만
붙인다면 작가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문장의 끝은 '야설이다.'로 맻을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백가흠의 글이 어떤 야설인지 질질 끌며 부연해보려한다.
야(冶)한 이야기, 밤(夜)에 관한 이야기. 이게 아마도
야설의 본질적인 의미일 것이다. 물론 야한 이야기라는 게 더욱 맞을 터이다. 풀무, 용광로, 대장간, 대장장이를 뜻하는 풀무 야,
또는 불릴 야 자가 어떻게 예쁘고 요염하고, 꾸미며 장식하는 뜻을 지니게 되었는지는 쉽사리 짐작할만하다. 금속을 다루는 곳이니
아마 옛날 서민들에게는 보석세공사와 장신구 제작가의 장소나 대장간이나 큰 차이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장간이 그런 일을
겸직했을 수도 있다. 남자의 힘은 곧 무기니, 아직도 남자는 크고 강하고 빠르고 시끄러운 것에는 대부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러니 강한 무기를 빠르게 내리치는 시끄러운 대장간은 그야말로 로망의 본산이며 자신들의 무기와 갑옷이 아름답게 벼려지는 미의
고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예쁘고, 장식하고 꾸미는 것이 바로 冶가 되었을 것이다.
야설은 그런 이야기여야
한다. 예쁘고, 요염하고, 장식되어 있거나 그런 것들이 등장해야 한다. 모두 다 포함하기 힘들다면 적어도 이 중 하나는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는 요염함이 있다. 말뜻 그대로, 요염이다. 글이 마음에 달라붙고 눈을 홀린다. 이야기는 역시나 대중소설이
아니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글에는 슬픔이 있다. 읽으면서 마음이 거북해지고 설마 싶은 일들이 깔렸다. 적어도 나는 아니니까
안심되지만 언제든 내가 그렇게 될 수 있고 나를 제외한 세상이 그런 것 같아 불편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분명히 야한 것이 있다.
금기가 금기 된 이유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모두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농담이 있듯 나는 그런 금기시된 성욕이 손 끝에
뭍어나는 글을 보고 있다. 취한 것처럼 어지럽고 열이 오른 것처럼 부양감이 느껴진다.
글이 꿈틀대며 나를 감싼다.
무엇이 이 책 속에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외면하던 세상이 이 안에 있다. 나를 불편케하고 그 곳에서 성욕을 느끼는 것은
도덕적으로 지탄받고 인격을 의심받을지도 모른다. 이 글 앞에서 나는 토막난 사람을 보며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과 같다. 내가 느끼는
것이 동경인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일체의 인간군상을 보며 야한 기분이 든다. 너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내게 있어서 백가흠의 글은 야설이 된다. 나만을 위한 최고급 야설이 지금 여기 있어 나는 행복하다. 새삼 내가 쓰레기라
기쁘다. 아, 연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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