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가. 에메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꿈같이 느껴진다. 굉장히 즐거운 추억이 된다. 이 책의 마지막
글자를 눈가에 흘려보내고 하나. 둘. 셋.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고 그저 행복한 쓴웃음만 얼굴을 움직인다. 이런 것이 꿈인가.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걸까라는 소박한 의문만 가지고 있지만 그 의문을 풀 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읽어보고 싶진 않다. 다시 읽어봐야 소용 없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으니까.
어쩌면 세상은 굉장히 치졸해서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난 세상이 왜 아름다운지 잘 모르겠다. 많은 시간이 나를 지나 저편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이편으로 뛰어오고 있다. 아마 지나간 저것들과 다가올 저것들의 시간을 모두 합쳐 세상이라 부를 것이다. 난 세상이
두렵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작고 나는 중요하지도 위대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나는 작고 비굴하며 치졸하고 허섭하고
가치없다. 그래서 가치가 있는 이런 세상이 두렵다. 이 세상은 나같은 더러움들이 모여 산다. 어쩌면 나만 하나의 까만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까만 점인 나의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껴야 될지도 모른다.
가끔 눈물나게 세상이 아름답다.
꿈결처럼 지나간 이 삶을 되돌아볼 때 나는 이야, 한 번 더 해보라고 해도 해볼만 한데, 라고 말할 것 같다. 내 삶은 빛나고
있지 않겠지만 삶이란 반짝거릴 가능성은 항상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동경이 생기고 미련이 남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빛나는 순간을 위해 수없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니 나는 인생의 그 순간을 위해 평생을 고통 속에 던지겠다.
치졸함 속에 세상이 빛나고 있다. 나는 정의도 공정도 아름다움도 아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내가 있으니까.
나라는 점으로 인해 세상이 하얗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세상 본연 속의 우리는 모두 치졸하다. 아니 치졸함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그래야 아름다운 순간이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굉장히 작지만 나는 보석을 투과하는 빛이 되리라. 내가
갈라지는 고통을 겪음으로 이세상에 다이아몬드의 불길을.
에메의 글은 모두 조촐하다. 그래서 에메의 글은 모두를
빛내주고 있다. 그 한순간의 광휘를 위해, 우리는 우리가 조촐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에메의 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나약함을 만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외칠 수 있다. 세상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위대하다.
'책과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러니까 이 판타지/무협은 말이지 (7) (4) | 2014.02.28 |
---|---|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감상. (0) | 2013.12.28 |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감상. (0) | 2013.12.08 |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감상. (0) | 2013.12.08 |
로버랜덤, 감상. (0) | 2013.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