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독서

파크 라이프, 감상.

UVRT 2014. 7. 28. 03:21


파크 라이프

저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출판사
노블마인 | 2010-03-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2년 대중성 높은 신인작가에게 주어지는 야마모토 슈고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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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독서를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독서를 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글을 잘 쓸 수 있을 거야. 좋은 글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번역서에 대한 비난을 많이 들었다. 번역이 이래서야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이래서는 원서의 맛을 살리지 못해, 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한 번도 공감해본 적은 없다. 양철북의 두 번역본을 옆에 두고 한 문장씩 읽어본 적이 있다. 확실히 분위기는 달랐지만 나는 둘의 우열을 구별할 방법이 없었다. 난 단 한번도 번역이 어지럽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대체 왜 그럴까. 나는 아직 그걸 잘 모르겠다.

사실 번역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원서가 더 이해하기 편했던 적은 있었지만. 그게 아마 Ues in Grammer 지 싶다. 철자가 맞을련지는 모르겠지만.

127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이런 글을 보면 감상은 단순하게 귀결된다. 굉장히 글을 잘 쓰고, 나는 아마 평생동안 이런 글은 써보지도 못한 채 죽을 거다. 운명은 거창한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거다. 정해져 있다. 쓸 수 있을리가 없다.

시선과 시선이 움직인다. 모순된 행동들 같고 어리석은 행동같지만 결국 그게 인생을 불확실하게 만들어보인다. 사람들은 흔히 운명같은 걸 믿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두려워하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싫어한다. 그리고 운명따윈 믿지 않는다고 한다. 어차피 인간은 모순되니까 그런 것도 꽤나 상관은 없는 것 같다.

자, 이 글을 보고 무언가 연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글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이 글은 이렇게 완성되고 끝나고 시작했는가. 반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난 파크에 가본 적이 거의 없어서 사실 파크 라이프는 잘 모르겠지만, 만화책에서 이런 파크 라이프를 본 것 같은 기분은 든다. 난 단 한 번도 알 수 없는 직장을 가진 사람들의 틈새는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물론 강남에는 파크가 없으니 느낌만 가져가면 될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아버지 생각이 많이 했다. 왠지 모르게 그랬다. 사실 아버지와 이 글은 닮은 구석이 조금도 없지만, 왠지 내가 아버지가 된다면 나는 이 책같은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운명이 이 책 속에 있는 기분이다. 그래, 운명처럼 만난 책이 아니라 결국 나는 이렇게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썩 나쁘진 않다.

플라워스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볼까. 비슷하겠다. 내가 누군가의 배우자가 된다면 이 책 같은 배우자가 될지도 모른다. 도시 속에서 내가 복사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저 사람과 내가 경험한 수십년은 사실 엇비슷하다. 그러니 저 사람과 내가 다르기도 힘들겠고 나는 나와 같은 해 같은 계절에 태어난 사람들의 열화판이기도 하고 복사본이기도 하다. 나의 삶은 도시라는 책 속에 있는 거대한 이야기의 한 페이지 번호일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책은 굉장히 두껍다.

그러니 나는 책을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내 이야기니까. 나라는 사람은 결국 이 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운명을 바꾸려면 신의 계시 정도는 받아야겠지만 나는 주 예수가 아니라 계시를 받지 못했고 싯다르타가 아니라 깨닫지도 못한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 무함마드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있을 따름이다. 나는 거대한 책의 한 페이지이고 새로운 책의 페이지가 되지는 못할 게 분명하다.

나는 도시의 사본이라서 뭘 해도 결국 정해진 틀 속에서 예상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용납되는 범위까지만 무언가를 할 것이다. 운명은 그런 것이다. 나는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