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독서

도시여행자, 감상.

UVRT 2014. 7. 23. 02:50



도시여행자

저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출판사
노블마인 | 2010-03-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 요시다 슈이치 2010년 최신작살며 사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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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캔슬된 거리의 안내'. 단편집의 마지막 글이다. 글들이 모두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 사이마다 흘러내린다. 투명하다고 해야 할까, 건조하다고 해야 할까. 글 사이마다 공기가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번역된 글을 읽고 문체를 논의하는 것은 썩 현명한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대체 글의 아름다움 외에 뭘 말해야 할까.

그러니 문장이 얼마나 유려한지 보다는 문장에 담긴 시선의 끝을 따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 시선에 공감할 필요는 없지만 무엇인지는 알면 좋으리라.

이런 본격파 소설, 한국이라면 순문학, 혹은 정통산문이라 분류할 수 있는 장르는 사실 나라를 초월하기 힘든 분야라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해당 나라의 언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또는 가장 잘 활용한 작품을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국의 문자 문명을 가장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것이 아마 순문학일 것이다. 삶의 방식이 사고의 방식이 먹은 음식과 걸어온 거리와 들린 가게에 녹아있는 모든 것이 이 예술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학은 아름답지만 내가 이해하기에는 난해하다.

이 글은 마치 와비사비. 일본식 다도에서 추구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외곬수적인 투명함, 타자성이 모든 단편을 관통한다. 현대 문명 속에 있지만 겉돌고 있다. 어떤 누구도 도시에 소속되지는 못한다. 도시는 너와 내가 모여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각개의 조립에 불과하다. 모래를 아무리 많이 모아놓더라도 모래와 모래가 연결되어 무언가가 되지는 않는다. 그저 모래다. 흙은 흙이라는 유기적 존재로 승화된다. 흙 알갱이와 흙은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모래는 단 한 알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다. 도시는 그런 곳이다.

일본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소외감, 혹은 고독감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한국에 살고 있으니까. 아쿠타가와를 받을 정도로 일본어를 잘 사용하는 작가가 어떤 아름다운 울림을 써내려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본어를 모르니까. 하지만 작가가 보고 있는 시선, 요시다 슈이치가 보고 있는 일본의 도시, 일본의 현대, 그 속의 일본인에 대한 감정은 어느정도 느낄 수 있다.

도시 속에서 우리는 개별적인 존재이고 그것은 항상 불안하다. 하지만 남과 관계를 맺는 것은 두려우며 그렇기에 나에게 헛된 이미지를 덧씌우려고 노력한다. 이것을 가면이라 부를 수도 있고 가식이라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있으니까 우리는 이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다. 서울에 살아본 적이 있다. 인구 천만의 도시라 나는 천만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다. 나의 일은 언제나 천만분의 일정도로 영향을 미친다. 도시는 나를 부정하고 나를 하찮게 만든다. 나는 도시에서 그랬다.

도시에 살지만 언제나 이방인이다. 이 안에서 나는 항상 혼자이고 외롭고 하찮고 비루하고 슬프다. 하지만 나는 도시에서 태어났고 도시에서 살고 있으며 도시에서 죽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애잔하다. 글은 맑은 물이 가득 담긴 잔을 통해 사람을 바라본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고 있든, 결국 이렇게 보일 것이다. 순응하고 감내해야 한다. 누구도 도시에 살지 못한다. 항상 우리는 도시를 안내받고, 여행하고 있다. 도시에는 사람이 살 수 없다.